대법원 측의 말을 듣고 재판부 결정을 바꾼 재판장이 당시 상황을 ‘대법원의 재판 개입’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증언했다.
염기창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결과적으로 재판 개입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당시 저는 자문이나 조언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염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1부 재판장으로서 심리하던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재판부는 이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여부를 묻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결정했다. 그 사이 염 부장판사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재판부 결정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이날 염 부장판사는 당시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뒤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러자 이 사건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소신에 따라 최초 결정을 한 이후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갈등을 인지하게 됐다면 이를 직권 취소했을 것 같으냐”고 질문했다. 이에 염 부장판사는 “대법원에 문의를 해서 직권 취소를 하고 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따져봤을 것”이라며 “전화로 방법을 듣고 거기에 따랐으니 (실제로는) 선후가 바뀐 것”이라고 답했다.
윤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한 질문을 거듭했다. 그는 이 전 상임위원이 단순한 동료 법관이 아니라 대법원 근무자였다는 점을 상기시킨 후 일반적인 동료 법관이 문제를 제기했더라도 직권 취소 결정을 했겠느냐고 물었다. 염 부장판사는 “가능하다면 재결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부장판사는 “이미 결정이 내려졌고 헌재로 송부될 텐데, 우리의 소신에 따른 결정이 설령 대법원의 판례와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치더라도 재판부는 당초의 소신과 판단을 유지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보이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이에 염 부장판사는 “그건 소신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재판부가 잘못된 판단이라고 인지했고 고칠 방법이 있다면 고쳤을 것”이라고 맞섰다.
염 부장판사는 증인 신문을 마치면서 “당사자 권익을 구제해준다는 생각만 앞서서 결정을 고친 것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고친 것이 돼 직권남용의 피해자처럼 됐다”며 “재판이란 것이 정말 함부로 할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잘못 해석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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