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아나운서를 채용하면서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한 방송사의 행태가 인권 침해 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같은 관행에는 성차별적 인식이 있다고 판단해 해당 방송사에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대전의 한 지상파 A방송의 주식회사 대표에게 남성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여성 아나운서를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채용해 온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앞서 A방송 계약직·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은 A방송이 정규직 아나운서로 남성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여성을 채용해 온 관행이 차별이라며 진정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임금, 연차휴가, 복리후생 등에서 자신들을 불리하게 대우한 것은 성차별적 행태란 것이다.
인권위 조사 결과, A방송이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었다. 반면 1997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채용한 15명의 계약직 아나운서와 5명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다. A방송은 결원 등 이유로 채용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여성이 필요하면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 형태로 채용한 데 반해 남성은 정규직으로 뽑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A방송은 “공교롭게도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일 뿐 성차별의 의도가 없었다”며 “실제 모집요강 등의 절차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거나 특정 성별로 제한한 바 없다”고 항변했다.
인권위는 계약직 및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들이 사실상 정규직 남성 아나운서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여성 아나운서들을 프리랜서나 계약직으로 채용할 만한 사유가 없으며 이러한 채용 관행의 밑바닥에 여성은 나이가 들면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차별적 인식이 있다고 판단했다.
채용 형태의 성별 간 차이는 대전 외 지역에서도 두드러졌다. A방송의 지역 계열사 아나운서 고용 형태를 보면 남성 아나운서의 87.8%가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형태로 일하는데 반해 여성 아나운서는 61.1%는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 및 프리랜서 형태로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A방송에 장기간 지속해온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 업무를 수행한 진정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도 주문했다. 아울러 A방송사의 대주주에게 본사를 포함하여 지역 계열사 방송국의 채용 현황에 대하여 실태조사를 실시해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 방송국들과 협의하는 등 성차별 시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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