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대형 레미콘 차량들이 드나드는 곳을 보세요.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수변공간이자 서울의 허파 역할을 하는 서울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죠.”
18일 서울 성동구 응봉산공원 정상에서 만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부지를 가리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공원에 산책 나온 구민들이 인사를 건넬 때는 활짝 웃으며 반겼지만 레미콘 공장 이전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는 이내 ‘진지 모드’에 들어갔다. 그는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은 지난 40여년간 성동구민의 숙원사업이었지만 이제야 가시화되고 있다”며 “민선 7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조속히 이전이 완료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삼표산업의 성수공장은 지난 1977년 들어섰다. 당시만 해도 성동구 일대에 도시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이었다. 이후 성동구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자리잡고 서울숲까지 들어서자 주민들 사이에서 이전 요구가 잇따랐다. 한때 현대자동차그룹이 삼표레미콘 공장부지로 본사 이전을 추진하며 급물살을 타기도 했지만 삼성동으로 신사옥 이전을 결정하면서 개발 계획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정 구청장은 삼표레미콘 공장부지 이전을 위해 주민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전략을 짰다.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88%의 찬성률을 이끌어냈고 범구민 결의대회와 공장 이전을 기원하는 문화공연까지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2017년 서울시·성동구·현대제철·삼표산업이 모여 오는 2022년 6월까지 공장을 철거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정 구청장은 “협약 체결 이후 현대제철과 삼표산업 사이에 진전이 없어 최근 구 차원의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시에 공장부지를 도시계획시설상 공원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라며 “오는 10월 시가 최종 결정하면 관련 절차를 마무리 하고 친환경공원 조성을 위한 절차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표레미콘 이전이 여전히 현안으로 남아있지만 민선 6기에 취임해 재선에 성공한 정 구청장이 그간 거둔 성과는 다채롭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스마트 포용도시’를 처음 주창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포용사회를 최우선으로 두되 스마트기술을 연계해 주민이 체감하는 혁신사업을 줄줄이 선보였다.
차량 내 영유아 하차 여부를 확인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 시스템’은 정부 주관 ‘2018년 스마트시티 서비스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 2018년 어린이가 무더위 속 차량에 방치돼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곧장 개발에 착수했다.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 기반의 이 시스템은 운전자가 차량 시동을 끄면 경보음이 나오고 운전자가 아이들의 하차를 확인한 뒤 전자태크에 접촉해야 경보음이 꺼지는 방식이다.
포용형 복지와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한 성동구의 혁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더욱 빛을 발했다. 방문지에 스마트폰을 갖다대면 본인인증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모바일 전자명부를 전국 최초 도입했다.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신속하게 추적할 수 있는 서비스로 호평을 받으면서 영국 로이터통신과 중국 CCTV 등 주요 외신도 앞다퉈 소개했다. 성동구는 지난 2월 관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전국 최초로 감염병 대응단계를 ‘심각’으로 격상시키며 선제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스마트 횡단보도 역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는 성동구의 ‘특산품’이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횡단보도를 분석한 뒤 첨단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연계했다. 야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횡단보도에 밝은 조명을 비추고 동작 감지기를 통해 보행자가 무단으로 도로에 진입하면 경고문구를 내보낸다. 횡단보도 정지선을 위반하는 차량은 자동으로 단속카메라에 촬영된다.
정 구청장은 “스마트 횡단보도를 운영한 결과 정지선 위반 차량이 77.8% 감소했고 교통사고도 88.4%가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며 “현재는 관내 사고 발생률이 높은 14개소에 설치돼있지만 내년까지 62개소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성동구는 문화예술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계획도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의 세계적 명물인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공공문화 건축물을 서울숲에 만드는 게 목표다. 서울숲에 2,000석이 넘는 대형 공연장과 문화시설이 들어서면 서울시민의 문화·관광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서울 동북권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남 예술의전당,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잇는 문화예술 삼각축을 완성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난 6년 동안 성동구의 사령탑을 맡아 굵직한 성과를 냈지만 정 구청장은 여전히 고민이 많다. 다른 자치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교육 및 학군 문제는 영원한 화두다. 자치구 차원에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더욱 애가 탄다. 교육환경 개선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 만큼 백년대계의 밑거름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기초를 지속적으로 다져나갈 방침이다.
최근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C노선의 왕십리역 유치가 자치구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GTX-C노선이 지나는 자치구 중 성동구만 정차역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강북 최대 교통허브인 왕십리역의 연간 이용객은 1억900만여명으로 인근 청량리역 6,800만여명보다 월등히 많다. 광역교통망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라도 왕십리역 신설이 필수적이라는 게 정 구청장의 설명이다.
그는 “성동구가 내세우는 스마트 포용도시는 주민들과 소통하고 호흡하며 행정 사각지대를 없애고 주민체감형 적극행정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행정 패러다임도 완전히 달라질 텐데 성동구가 자치행정의 혁신을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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