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과제에 맞닥뜨립니다. 선생님도 없고, 강의도 없습니다. 정보를 수집하고 필터링하는 법을 배우고 어떤 데이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무관한 것인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들은 토론하고 협력하고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서로 설명합니다. 집단지성을 만들어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것이죠. 실험적인 ‘시도하고 실패하기’ 방식입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인재 교육기관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에콜42에는 교수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 교수의 일방향적인 강의는 없다. 대신 학생들이 독립적 주체가 돼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한다. 소피 비제 에콜42 교장은 이러한 교육을 ‘피어 투 피어 학습법(Peer to Peer learning)’이라고 소개했다.
에콜42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입학 전부터 동료 간의 상호학습을 시작한다. 에콜42 지원자는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를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코딩(Coding)으로 해결한다. 강도 높은 4주간의 합숙 기간이 끝나면 최종 1,000명이 선발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팀 단위로 진행된다. 동료와 협력해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에도 동료 간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학생은 동료 평가 회의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대개 다른 5명의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실패하면 주저 없이 다시 시도해 경험을 쌓게 된다”고 말했다.
에콜42의 학습법은 우리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 교육 방식과 다르다. 그는 “에콜42에 입학하면 지식은 누군가에게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나서고 동료들과 협의하며 만들어내야 한다”며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제 교장은 “집단지성에 의존하는 이런 학습 방식은 교사가 설명한 것을 그대로 복사하거나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추구하고 실험하며 설명을 통해 학생들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면서 “피어 투 피어 학습법에 근거한 혁신적 교육방법은 기업의 기대에 맞아떨어진다”고 확신했다. 에콜42 졸업생의 취업률은 100%다.
에콜42의 사례처럼 디지털 교육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단순 노동과 같은 일부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의 디지털 일자리 창출 대책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며 이 같은 논쟁이 떠올랐다. 이에 대해 비제 교장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빌려 “모든 산업혁명은 그들이 파괴한 것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면서 “슘페터의 창조파괴론에서 혁신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터넷의 부상이 미국의 경우 지난 1995~2010년 50만개 이하의 일자리를 없앴지만 25년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1990년 이후 창출된 새로운 일자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비제 교장은 디지털 혁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디지털 혁명은 일의 육체적인 어려움을 끝낼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가장 반복적이고 육체적이고 피곤한 일이 로봇화될 것이고 그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제 교장은 “에콜42는 나이·성별·졸업장·출신 또는 사회적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며 “우리 학생들 중에는 전통적인 제도로부터 제외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은 정확히 말해 디지털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대면 방식에 기초한 에콜42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한국에서 원격수업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대면 시스템으로 동료와의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충격은 컸지만 오히려 에콜42의 회복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우리는 학생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원격 학습을 계속할 수 있도록 180도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가 예시로 든 대표적 변화는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도입이다. 온라인대중공개강좌는 인터넷을 통해 대학의 강의를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이수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던 200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교육 환경이 조성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하버드나 릴 대학의 온라인대중공개강좌 제공 등 전례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협력하고 배우며 학생 공동체를 연합하는 방식을 재창조하기 위한 노력이 네트워크 전체에 생겨났다”며 “학습 매개체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모두 연습·협업, 그리고 미지의 문제에 대한 정면대결을 통한 기술 습득이라는 동일한 결과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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