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은 추워도 힘들고 더워도 힘들죠. 코로나로 그나마 더위 피할 곳마저 사라졌으니 올 여름을 어떻게 날지 정말 걱정이네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60대 주민 이모씨는 집 밖 그늘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초여름이지만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0도까지 올라갔다. 예년 같으면 근처 경로당에 가서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었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문을 닫아 더위를 피할 곳이 사라졌다. 여기에 최근 쪽방촌 주민 한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감염 우려까지 확산하는 분위기. 가뜩이나 다가올 무더위도 힘든데 코로나19 공포와도 싸워야 하는 셈이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영등포와 동자동, 돈의동, 창신동 등 서울 소재 쪽방촌 4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집 근처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연신 부채질하며 때 이른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쪽방촌 주민 대부분 집에 에어컨이 없다보니 찜통 같은 방안보다 간간이 바람이 부는 바깥이 시원하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공원에서 더위를 피하던 박모(79)씨는 “여름에는 오히려 방 안이 더 덥다 보니 차라리 공원에 나와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주요 공원과 경로당이 문 닫으면서 쪽방촌 주민들은 더위를 피할 곳이 사라지고 있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김모씨는 “평소에는 근처 탑골공원이나 창경궁까지도 갔는데 모두 문을 다 닫아서 집 근처 그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운영하는 커피숍도 여름이 되면 주민 쉼터로 쓰였지만 코로나19로 매장 이용이 금지됐다. 이날 커피숍을 찾은 한 주민은 “왜 올해는 여기서 쉬지 못하게 하는거냐”며 항의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무더위 못지않게 주민들을 힘겹게 하는 건 코로나19 공포다. 지난 13일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80대 주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주민들의 두려움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종로구 보건소가 해당 쪽방촌 주민 전원을 검사한 결과 다행히 추가 감염자가 나오진 않았지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촌 특성상 집단감염의 우려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돈의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60대 주민 임모씨는 “이 곳 주민 대부분 나이 들고 몸이 허약한 상태라 코로나19가 정말 두렵다”고 토로했다.
쪽방촌에서 주민 편의를 돕고 있는 상담소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매년 여름철이면 24시간 무더위 쉼터를 운영해왔는데 코로나19로 축소 운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최영민 돈의동쪽방상담소장은 “기존 무더위 쉼터로 이용하던 상담소 내 공간뿐 아니라 다른 곳을 추가 개방해 주민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창신동 쪽방상담소는 주민들에게 얼음물과 얼음팩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한 만큼 폭염과 감염에 동시 노출된 저소득층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 역할이 더 절실해졌다”며 “쪽방촌 주민에게 냉방시설을 직접 지급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어긋나는 기존의 폭염대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권용석 대구경북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무더위 쉼터 등 한 곳에 다수가 장기간 머무는 시설은 집단감염의 위험이 있다”며 “코로나19 방역과 연계한 폭염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기문·김태영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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