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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치 교육데이터 방치…맞춤형 학습 위해 규제 풀어야"

[서경이 만난 사람] 박혜자 KERIS 원장

코로나로 학교들 디지털 문맹 벗어나

데이터3법 통과됐지만 법적 걸림돌 여전

디지털교과서 위해 저작권 문제 해결 필요

박혜자 KERIS 원장이 서울경제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상 초유의 온라인개학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우리나라 교육정보화 최전선에 서 있는 기관이라는 점을 국민들의 인식 속에 심는 사건이 됐다. 교육부 산하기관인 KERIS의 교수학습 시스템 ‘e학습터’ 서버가 세 차례 다운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원격수업 안착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KERIS는 올해 초부터 3개월간 이어졌던 비상체제를 연장해가며 하루 최대 수용능력 4만명에 불과했던 ‘e학습터’를 3주 만에 330만명이 동시에 접속해도 버텨낼 수 있는 온라인 학습관리시스템(LMS)으로 변신시켰다. 박혜자(사진) KERIS 원장은 이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박 원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 본사에서 인터뷰하는 내내 “(코로나19로 촉발됐지만 전면적인) 온라인 원격수업은 교육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며 “(어렵게 잡은) 디지털 교육혁신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김정곤 사회부장 mckids@sedaily.com

“정치에 실패하고 2년간 강의를 하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찾아 헤맸어요.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를 뒤져 제가 할 수 있는 일자리 서너 곳을 찾았는데 아직 공모 중인 곳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KERIS였죠.”

박 원장은 호남대 인문사회대학장을 지내는 등 대학에서 20년간 재직한 교육자 출신이다. 19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갑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법안을 법제화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며 의원활동은 접어야 했지만 지난해 4월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인 2년여의 시간은 그에게 ‘교육정보화’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박 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교육에 디지털 DNA(유전자)를 심겠다고 달려들었지만 KERIS가 운영하는 에듀파인 개편부터 만만치 않았다. 2008년 구축된 에듀파인은 학교 예산 편성, 수입·지출 관리, 결산 등을 전산화하는 지방교육재정시스템이다. 장비 노후화로 접속 오류가 잦고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교육부가 2015년부터 1,500억원을 들여 개편 작업에 나섰다. 17개 시도 교육청과 전국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에듀파인과 업무관리시스템을 하나로 묶은 지방교육행·재정 통합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결과물이 올해 1월2일 개통한 ‘K-에듀파인’이다. 하지만 시스템 출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데이터 과부하로 경기도에서 K-에듀파인의 자료 집계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터졌다.

박 원장은 “1월부터 3월까지 비상체제였다. 시스템을 더 면밀하게 이해했더라면, 상세히 파악했더라면 어땠을까”라며 어려웠던 시간을 되돌아봤다.

사립유치원에 K-에듀파인을 도입하는 과정도 만만찮았다. 2018년 10월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사태가 터진 뒤 모든 유치원이 에듀파인을 사용하도록 유아교육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유치원들의 반발이 강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유치원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올해 1월 통과된 뒤 3월 (유치원 K-에듀파인) 개통까지 초긴장 상태로 살았다”고 말했다.

박혜자 KERIS 원장이 서울경제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기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3월에는 코로나19로 등교가 어려워진 전국 학교의 온라인개학에 대비하라는 정부의 주문이 KERIS에 떨어졌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자 교육부는 한국교육방송(EBS)의 ‘EBS온라인클래스’와 KERIS의 e학습터를 LMS로 활용해 전면 원격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LMS는 교사와 학생이 수업 내용을 공유하고 학습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네이버의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NBP)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해 서버 용량을 늘릴 여건은 됐지만 3주 만에 330만명이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바꾸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네이버와 대구 퓨전소프트 등 기업들의 도움으로 서버를 안정화시켰고 개학 이후에도 원격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박 원장은 “2002년 월드컵 때도 300만명이 동시 접속한 전례가 없었다”며 “선생님과 기업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원격수업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코로나19 충격이 역설적이게도 온오프라인 연계수업인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기기 활용 빈도는 국제교육지수(PISA) 정보통신기술(ICT) 친숙도 조사(2018년) 대상 30개 국가 중 꼴찌 수준인 29위에 그쳤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교육에 IT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원격수업은 국내 디지털 교육이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되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원장은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디지털 역량)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며 “학생들이 스마트기기를 보고 있으면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한다. 부모님들이 입시공부만 신경 쓰고 디지털 역량은 중시하지 않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맹은 디지털 리터러시에도 적용되는 개념”이라며 “디지털 역량은 생존 방법과도 같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학령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교육투자를 줄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이 맞춤형 학습, 평생교육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학생 수가 아니라 수요를 근거로 예산과 정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 하는 오프라인 수업만 교육이 아니다”라며 “과거에는 학생이 못 따라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맞춤형 학습을 한다. 교사 1인당 평균 학생 수가 20명대가 됐는데 우리가 대중교육에서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하는 때가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혜자 KERIS 원장이 서울경제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기자


특히 박 원장은 맞춤형 교육에 KERIS가 운영하는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데이터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 나이스 시행 이후 20년 가까이 모은 데이터를 가공하면 지역·환경·학습상태 등에 따라 최적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KERIS는 지난해부터 3년에 걸쳐 지능형 맞춤학습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박 원장은 “학생의 학습상황 데이터를 보고 인공지능(AI) 추천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KERIS 외에 한국교육개발원(KEDI)·EBS·한국과학창의재단·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 공공기관 시스템에 교육정보들이 흩어져 있다”며 “데이터를 한데 모아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데이터 규제로 나이스의 268가지 세부정보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초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데이터3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신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비식별화된 정보를 정보 소유자의 사전동의 없이 통계 작성, 연구 등에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학교가 가지고 있는 학생 정보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교장·학생·학부모의 동의 없이는 쓸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 제30조의6 1항은 ‘학교의 장은 제25조에 따른 학교생활기록과 (중략) 건강검사기록을 해당 학생(학생이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학생과 학생의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KERIS는 개정 데이터3법과 초·중등교육법 간 충돌 소지가 있어 나이스 정보 활용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섯 가지 예외조항이 있지만 개인정보 침해 우려에 실무자들은 적용을 꺼리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고교 학교생활기록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던 것처럼 학생 정보 반출은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박 원장은 “KERIS의 가장 큰 경쟁력은 나이스를 운영하며 20년 가까이 축적한 교육정보인데 이 데이터를 갖고만 있지 정작 사용할 수는 없다”며 “법을 개정해야 나이스 데이터를 맞춤형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직에 빅데이터부를 신설했지만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오는 교육 이슈 분석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교육정책이 바뀔 때 과학적으로 분석해 제안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교육정보를 비식별화할 수 있는 여러 기법이 있다. 비식별화로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줄일 수 있다. 금융에서는 잘되고 있는데 교육에서는 정보 활용을 시도조차 못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KERIS가 운영하고 있는 디지털교과서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 열풍 이후 정부가 AR·가상현실(VR) 기술을 교과서에 접목하겠다며 디지털교과서를 2018년부터 도입했지만 ‘공룡이 무슨 소리를 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재 초등 디지털교과서 속 공룡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 원장은 “교과과정심의위원회 심의에 막혀 공룡 울음소리를 교과서에 싣지 못하고 선생님들이 디지털교과서 일부를 발췌해서 수업자료로 쓰고 싶다는데도 저작권 문제로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관계 부처들이 협력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판교에 에듀테크 체험 공간 만들 것”


“영국에는 에듀테크(교육기술) 기업들의 기술을 직접 경험하고 평가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박혜자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은 21일 ‘에듀테크 소프트랩(가칭)’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에듀테크사들이 각자 개발한 기술을 알리고 학교 등 교육기관들도 직접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무료 공간이다.

KERIS는 교육부·지방자치단체와 논의를 거쳐 올 하반기 소프트랩 조성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ERIS 본사가 있는 대구의 정보기술(IT) 기업 집적단지인 알파시티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경기도 판교 등에 소프트랩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박 원장은 “에듀테크사가 창업 경험이 짧은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이들이 기술과 인력을 교류할 수 있는 무료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학교에서 에듀테크 기업의 기술을 사용하려고 해도 어떤 기술이 있는지 모르고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소프트랩이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듀테크 산업이 가장 발달한 국가로 꼽히는 영국에서는 지역 곳곳에 테스트베드가 있다. 업체가 상품을 전시하고 정부나 교육기관에 연구 성과와 기술 효과를 알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매년 1월 하순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교육기술박람회인 ‘BETT’에 각국의 교육정보화 기관과 기업들이 총집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 업체 100곳 이상이 올해 1월 BETT에 참가했다. 저도 가고 싶었지만 K에듀파인 개통 준비로 참석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KERIS는 지난해 11월부터 소프트랩 조성계획을 세우고 국회에 관련 예산 30억원을 요청했지만 실제 편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서는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탓에 본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 원장은 “교육부·기획재정부 논의를 거쳐 올해 예산을 다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KERIS는 에듀테크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민간 기업이 원격수업 플랫폼 시장에 적극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방침이다. 온라인개학으로 혼란을 겪을 당시 단기간에 서버가 안정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민간 기업들의 기술에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현재 원격수업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EBS온라인클래스’, KERIS의 ‘e학습터’ 등 공공 시스템과 구글 클래스룸 등 해외 기업 플랫폼이 주로 쓰이지만 여러 국내 민간 플랫폼까지 생기면 학생·교사들의 선택지도 그만큼 늘어난다.

박 원장은 “요즘 에듀테크사들을 만나보면 새 교수학습방법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많다. KERIS는 플랫폼 기준만 정해주고 민간 기업도 교육 플랫폼을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학교에 바우처를 지급하면 여러 플랫폼 가운데 원하는 상품을 구매해 쓰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ERIS의 대표 시스템인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수출은 국내 에듀테크사들에는 해외시장으로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원장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나이스 수출 구상을 처음 제안했다”며 “나이스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시스템이다. 나이스가 수출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에듀테크 기업들에 비빌 언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리=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She is...

△1956년 전남 구례 △1974년 전남여고 졸업 △1978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0년 이화여대 정치학 석사 △1993년 서울시립대 행정학 박사 △2004년 전남도청 복지여성국장 △2009년 호남대 인문사회과학대학장 △2012년 19대 국회의원 △2013년 민주당 최고위원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2019년 4월 KERIS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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