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선 가운데 시장에 풀린 돈이 투자 대상을 찾아 주요국 자본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제로금리 수준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외국 기관의 투자한도 규제를 완화한 중국으로 핫머니가 대량 유입되는가 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대규모 양적완화(QE) 등에 힘입어 미국 은행들의 예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거품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외국 투자가들의 지난 5월 중국 채권 순매입액이 4월보다 104% 늘어난 194억달러(약 23조5,497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채권매매 프로그램인 본드커넥트 자료에서도 외국 투자가들의 중국 채권투자 쏠림 현상은 확인된다. 본드커넥트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 투자가들의 중국 채권 보유액은 전월 대비 1,146억위안 증가한 2조4,260억위안(약 416조6,17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8개월 만에 가장 많은 액수라고 SCMP는 전했다.
투자자들의 중국 채권 선호는 채권금리의 기준이 되는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제로금리대를 유지하는 반면 인민은행의 기준금리는 4% 수준에 이른다.
인민은행이 지난달 적격 외국 기관의 투자한도까지 폐지하면서 중국 채권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로빈 싱 모건스탠리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해외 투자가들이 국채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국 채권시장에 큰 관심을 보인다”며 “중국에 유입되는 연간 자금 규모가 1,00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은행에도 돈이 뭉텅이로 들어오고 있다.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1월 코로나19가 본격화한 뒤 미국 은행들의 예금은 무려 2조달러(약 2,429조8,000억원)나 불어났다. 1·4분기 JP모건은 전 분기 대비 18%, 씨티그룹은 11%나 급증했다. 특히 4월에만 예금이 8,650억달러 늘어 과거 1년 전체 증가액보다도 많았다.
이는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크게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QE)에 행정부와 의회도 지금까지 약 3조달러의 재정지원책을 내놓았다. 실제 6,600억달러 규모의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은 정부 대출을 받게 되면 이 돈이 예금계좌에 먼저 들어간다. 보잉과 포드 같은 대기업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출을 받아 이를 예금으로 바꿔놓았다. 또 1인당 1,200달러씩의 지원책과 주당 600달러의 추가 실업급여가 입금되면서 개인 잔액이 크게 늘었다.
개인들의 넘치는 유동성은 증시로 쏠리고 있다. 미국민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주식을 사들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증시는 3월23일 저점을 찍은 뒤 50% 가까이 높아진 상태다.
월가에서는 유동성이 금융시장을 키워 결국 거품이 터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소시에테제네랄(SG)의 앨버트 에드워드 글로벌전략가는 “시장에 더 많은 유동성이 공급되고 있지만 결국은 펀더멘털이 가장 중요하다”며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연준이 전능하지 않으며 시장이 현 수준에서 30%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거품붕괴 경고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채권을 비롯해 금·부동산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올해 세계 경제가 6% 역성장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과 앞으로 10년 동안 연간 물가상승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미국·유럽의 인플레이션 지표가 나왔음에도 투자자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확대 가능성을 높게 보고 이에 발맞춰 베팅에 나선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각국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책 등이 10년 동안 멈춰 있던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해 투자자들이 돈을 쏟아 붓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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