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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ADD의 기술 유출과 방사청의 무능

기술 절도와 무책임 행정 극치

노욕과 극도 이기심 엄벌 필요

기성 세대는 대의명분 지키고

젊은 층은 불의에 공분하기를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나는 분노한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일부의 일탈에. 또한 실망한다. 방위사업청의 솜방망이 감사에. 방사청은 ADD 퇴직자들의 일부가 해외로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잡았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빠져나갔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평소에는 그토록 보안을 강조하던 방사청이 무능한 것인지,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다. 발표 시점에 교활함까지 보인다. 6·25 호국 영령에 죄스럽지 않은가. 보다 엄정한 재조사가 필요하다.

기술 유출은 중대한 범죄다. 국가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기술이 빠져나가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영국인 산업스파이 롬브 형제가 지난 18세기 초반 비단 제조 기술을 빼낸 후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쇠락의 나락에 빠졌다. 미국 건국 초기의 급속한 산업화도 사무엘 슬레이터나 프란시스 로웰 같은 산업 스파이들이 영국에서 방적 기술을 훔쳐온 데 힘입었다. 기술 유출 공방전은 비단 옛날 얘기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 기저에는 중국의 산업 스파이 행위에 대한 미국의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ADD의 퇴직자들이 기술을 국외로 빼돌린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안보를 국가 지상과제로 삼고 때로는 개인의 권리마저 유보했던, 나라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았던 연구진이 정년을 맞아 나라를 등졌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급여도 일반 공무원보다 많이 받았을 터인데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았는지…. 안타깝다. 더욱 걱정인 것은 따로 있다. ADD의 일탈은 우리 사회 전체의 단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세 가지 측면에서 ADD 사례는 망가지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첫째, 어느새인가 우리는 대의와 공분을 잊어버렸다. 기자 사회에 들어올 때 다짐하고 선배들에게 교육받았던 ‘멸사봉공’의 기억이 아물거린다. 요즘 후배들에게 개인보다 공공이 우선이라는 얘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ADD 연구진들은 더했으리라. 기술도 자본도 없던 우리가 소총에서 전투기·미사일을 양산하는 단계에 이른 것도 ADD가 불철주야 연구에 매달린 덕분이다. 국가는 그런 연구진에 최상의 대우를 베풀었다. 외국 수준에는 못 미치겠으나 예산과 연구환경에서 다른 부분보다 우선순위를 배정받았던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안보 관련 기술을 팔았다면 국가에 대한 배신이 분명하다.



둘째, 나라를 배반한 일부 연구진의 행태는 대한민국 상위계층의 의식과 행태를 상징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으로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가운데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의 이기심이 합쳐진 결과다. 이기심을 부추기는 세력은 따로 있다. 투기꾼 몇몇이 수십억원을 부동산 중개업소에 맡기고 매물을 있는 대로 거두라는 주문만 하면 부근 부동산이 급등하는 행태는 이젠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투기꾼 몇몇의 정체다. 많이 배우고 가진 자, 국가로부터 상대적인 혜택을 더 받은 계층이 눈앞의 이익에 공공선을 외면하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

ADD의 비행(非行)이 한국 사회와 닮은꼴인 세 번째 유형은 가장 치명적이다. ‘노욕(老慾)’과 ‘노추(老醜)’가 그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늙어가는 사회다. 취업과 주택 마련, 결혼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여건이 부모 세대보다 좋아졌다고 자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원 가능한 사회적 자산을 후대에 온전히 물려줘도 부족할 판인데 빼돌리는 행위는 추악하다. 미래에 대한 범죄다. 이대로 간다면 기성세대는 노추의 세대로 기억될 게 뻔하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딱 하나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나이 먹은 자들이 대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의 공분을 살 뿐이다. 폴란드 태생의 영국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현대를 원칙과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로 봤다.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기성세대는 자리를 잡고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다. 정부는 ADD의 일탈과 방사청의 무능을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을 위해. 후대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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