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을 사이에 두고 서울시청사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더 플라자 호텔’이 준공 42년 만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층 일부 공간을 철거해 건물 뒤편인 북창동과 서울시청 간 보행로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옥상에는 투숙객이 아닌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전망대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이 모두가 호텔 건물 때문에 단절된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더 플라자 호텔이 지어진 목적이 현재의 리모델링 목적과는 정반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호텔이 첫 삽을 뜬 1973년에는 주변 지역을 최대한 가리기 위한 ‘병풍’ 역할로 호텔 건물이 기획됐다고 합니다. 무엇을 왜 가리려고 했던 걸까요. 이번 <부동산 TMI>에서는 서울 도심 개발의 깊은 역사를 품고 있는 더 플라자 호텔의 건설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 전 세계에 방송된 1966년 서울시청 주변의 슬럼가
=1966년 서울에는 대형 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이 방한한 일입니다. 서울 시민이 350만 명이었던 당시 200만 명의 환영 인파가 동원됐을 만큼 성대한 행사였고, 이 모습은 위성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습니다. 전후 서울의 모습이 처음으로 세계인에게 알려진 순간이었죠.
그런데 해외에 있던 동포들은 이 방송을 보며 아연하고 맙니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남산까지 펼쳐진 슬럼지대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 살던 한국인 교민들은 서울시청 주변의 슬럼지대를 깨끗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하기에 이릅니다. 정부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서울 도심 재개발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됩니다.
◇ 더 플라자 자리, 원래 화교들의 땅이었다?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덕수궁, 환구단에 둘러싸여 있는 더 플라자 호텔은 서울의 중심 중에서도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때문에 도심 재개발의 첫 번째 타깃이 될 수 밖에 없었죠. 당시 이 땅의 약 절반 이상은 한국화약(한화의 전신. 더 플라자 호텔은 한화호텔앤리조트 소유임)과 김종희 창업주의 소유였습니다. 한국화약의 경우 자본력과 개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도심 재개발에 적격인 지주였지만, 나머지 절반의 땅은 여러 명의 화교들이 소유하고 있어 설득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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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서울시는 화교 소유의 땅에 고층의 ‘화교회관’을 세워 지분에 따라 공간을 분양한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화교들도 서울시가 공사 기간 동안 임시 영업장까지 구해준다는 말에 화교 회관 건립에 동의했습니다. 서울시가 앞장서 화교회관을 세워준다고 약속하자 대만 정부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보조금을 전달해오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화교회관 건립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화교 지역 땅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던 한국인 지주들이 회관 건립에 결사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차일피일 미뤄지는 회관 건립계획에 지친 화교들에게 접근한 것은 한국화약이었습니다. 한국화약은 화교들의 땅을 평당 107만 원에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땅값이 평당 1~2만 원, 왕십리와 청량리 일대 상가가 평당 2~3만 원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화교들은 땅을 팔고 서울의 다른 곳으로, 해외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대만 현지 언론에도 보도되며 논란을 일으켰고, 대만 정부는 강력한 유감을 표합니다. 결국은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양택식 시장이 당시 담당자들과 함께 대만을 직접 찾아가 사죄하기도 했습니다.
◇ 서울 도심개발 1호였던 더 플라자, ‘서울형 도심 리모델링 1호’ 되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973년 ‘프라자 호텔’이 첫 삽을 떴습니다. 서울 도심부 재개발 1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화건설의 전신인 태평양건설이 이 호텔을 짓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준공으로부터 42년이 지난 지금, 더 플라자 호텔은 서울형 도심 리모델링 1호 사업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리모델링의 핵심은 1층의 일부를 철거해 서울시청부터 서울광장, 북창동을 도보로 다닐 수 있도록 연결하고, 옥상도 개방하는 것입니다. 또한 호텔 뒤편에 있는 한화빌딩과도 도시의 슬럼가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병풍’ 역할로 만든 호텔이 42년이 지난 지금은 병풍을 걷어내고 도시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를 허물기로 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1970년대 서울에는 더 플라자호텔을 비롯해 우후죽순으로 대형 빌딩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번 도심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으로 다른 건물들도 변신을 고민할 텐데요, 그들이 과연 과거와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지 기대됩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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