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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글로브 극장 화재

1613년, 셰익스피어 문학의 산실

셰익스피어 문학의 산살인 글로브극장의 단면도. 지난 1997년 다시 세운 셰익스피어 글로브도 이런 스케치와 문헌에 따라 복원한 것이다./그림=위키피디아




1613년 6월29일, 영국 런던 템스강 남쪽 사우스위크 지역 글로브극장. 공연 도중 발생한 화재로 극장이 모두 불탔다. 1년 뒤 거의 같은 규모(3,000석)와 형태의 제2글로브극장이 들어섰다. 다만 불이 번졌던 지붕의 초가는 타일로 바꿨다. 런던 시민의 꾸준한 사랑을 받던 이 공연장은 1644년 헐리고 말았다. 대중극장이 비종교적이며 사람들을 타락시킨다고 여겼던 청교도의 탄압 때문이다. 1997년 이 극장은 원래 자리에서 230m 떨어진 곳에 원형 그대로 복원됐다. 안전을 위해 객석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인 이 극장의 복원은 세계적 관심거리였다.

재건립 사업에 영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성금이 모인 이유는 극장의 새 이름에 있다. 셰익스피어 글로브극장(Shakespeare‘s Globe). 건설(1599년)부터 글로브는 셰익스피어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극단의 배우 겸 작가로 지분도 10% 소유했다. 화재로 전소된 1차 글로브 극장에서 무대에 올라간 25개 작품 중 셰익스피어가 17개를 썼다. ‘글로브’라는 이름도 희곡 ‘뜻대로 하세요’의 ‘지구 전체는 하나의 연극무대’라는 대사에서 나왔다. 화재 역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 ‘헨리 8세’ 공연 도중 왕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 쏜 대포의 불꽃이 짚으로 엮은 극장 지붕에 붙으며 일어났다.



사우스위크 지역은 당시 ‘재미있는 지역’으로 이름났었다고 한다. 개가 곰이나 소를 괴롭히는 공연장, 창녀촌과 술집이 뒤섞인 이 지역에 16세기 후반부터 3,000~4,000석 규모의 대중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글로브극장도 인근 로즈극장의 성공에 자극받아 설립된 것이다. 런던의 당시 극장가는 북서쪽과 템스강 남쪽 두 군데. 군중이 모인 장소에서 정치적 소요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 가능성에 대비해 공연장을 외딴곳에 몰았다. 런던 시민들은 한참 걷거나 강을 건넌 뒤에야 공연을 봤다.

주목할 대목은 이런 불편에도 런던 시민의 1%가량은 항상 대중공연을 즐겼다는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서 스페인 무적함대를 누르고 막 대양으로 발돋움한 잉글랜드의 비상에는 문화의 힘이 깔려 있었다. 독서를 게을리하고 문화를 즐길 수 없는 민족이라면 정치나 경제에서도 두각을 내기 어렵다. 대졸 작가가 즐비해도 문법학교만 나온 셰익스피어가 차별받지 않고 작가로 성공할 수 있던 환경도 부럽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재건될 때 세계의 애호가들이 몰렸다는 글로브극장마저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이 중단된 탓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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