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시행한 가운데 홍콩에서 자기검열의 분위기가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1일 보도했다. 보안법을 등에 입은 친중 세력과 당국이 출판 등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보도에 따르면 오는 15일부터 시작하는 ‘홍콩 북페어’를 앞두고 홍콩의 출판사들이 당국의 단속을 두려워하며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0만명이 입장한 대규모 행사인 홍콩 북페어는 홍콩에서 언론 및 출판의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사히신문은 홍콩에서 교사로 일하는 양쯔쥔(30)씨의 사례를 들어 현지 소식을 소개했다. 양씨는 지난해 6월 홍콩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의 체험과 시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을 이달 중 출판할 계획이었지만 출판사 3곳으로부터 연달아 거절을 당했다.
출판사들이 직접 거절의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양씨는 짐작이 갔다고 전했다. 그 무렵부터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국의 눈총을 받을 것이 두려워 양씨의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양씨는 대만의 출판사를 통해 책을 겨우 낼 수 있게 됐지만 출판이 늦어지면서 홍콩 북페어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급기야 북페어 주최자들은 올해 참가자들에게 ‘불법 서적’을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같은 자기검열 분위기는 친중 단체의 활동으로 인해 더욱 퍼졌다. 지난 6월 한 과격한 친중파 정치단체는 페이스북에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서적을 현장에서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홍콩의 한 출판사 사장은 1966년부터 10년 간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최근 현지 여론조사에서 홍콩보안법에 대한 여론은 반대 56%, 찬성 34%로 반대가 훨씬 우세하다. 하지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보안법 반대세력을 ‘홍콩 시민의 적’이라고 규정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아사히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홍콩 시위의 기세가 떨어진 시민사회에서는 체념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중시하는 저소득층의 경우 중국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홍콩은 6월 30일 밤 11시(현지시간)부터 홍콩보안법 시행에 들어갔다. 이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162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홍콩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데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 법에 서명했다. 홍콩보안법은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 부칙 삽입 절차도 거쳤다.
중국은 논란의 대상인 홍콩보안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비밀에 부쳐오다 홍콩 반환 23주년 기념일 1시간 전에 법 시행과 동시에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전문을 공개했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홍콩보다 앞서 2009년 시행된 마카오의 국가보안법이 최고 형량을 30년으로 규정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지난해 범죄자 본토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반중 시위대가 ‘홍콩 독립’이나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지금은 이런 시위 행태가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또 홍콩 정부가 폭력 행위를 일삼는다고 규정했던 급진주의적인 시위대 역시 ‘테러활동’에 포함돼 처벌 대상이 된다.
범죄 행위 가운데 외국 세력과의 결탁에는 외국에 중국이나 홍콩에 대한 제재를 요청하는 행위도 포함됐다. 예를 들어 이 법을 적용하면 대표적 민주화 인사 조슈아 웡이 지난해 미국에서 홍콩 인권법 제정을 촉구한 행위 등이 해당한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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