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위원장 못 나가게 막아!” 1일 오전10시15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장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강성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에 대한 최종 의견을 듣기 위해 오전9시 예정됐던 중집은 개최되지도 못했다. ‘사실상의 위원장 감금’이었다. 같은 시간 국무총리실은 민주노총의 불참 통보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합의문’ 서명이 무산됐다고 공지했다. 행사 개최를 15분 남겨둔 때였다.
당초 경영계에서는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에 대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사회적 대화의 기본인 ‘고용과 임금의 주고받기’부터 빠졌기 때문이다. 경영계와 정부는 민주노총을 배려해 임금동결 내지 삭감을 제외하는 대신 고용에 대한 부분도 구속력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력을 민주노총 강경 조합원이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모양새를 넘어 아예 판 자체를 깨버린 것이다. 민주노총이 단기간에 합의안 추인을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와 경영계에서는 민주노총을 제외한 5자 협의를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용유지 대 임금 동결’조차 없었다=이번 사회적 대화에는 “경영계는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발휘해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과 “노동계는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노사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원만한 교섭 타결에 최대한 노력한다”고 언급돼 있다. 결국 노동계가 요구한 ‘고용유지의 강제’와 재계가 요구한 ‘임금동결 내지 삭감’ 모두 반영되지 못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과 관련,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특성을 고려해 노사 및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돼 있어 사실상 전속성 여부를 노사가 협의해 결정한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고용보험료 인상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검토한다”고만 돼 있다.
결국 합의안에는 정부의 재정부담만 가득 담겼다. △고용유지지원금 90% 상향 지원 기간을 6월에서 9월까지 연장 △특별고용지원업종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간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연장 △워라밸 일자리 장려금(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인상 지원기간을 연말까지 연장 △특별고용지원업종의 추가 지정을 적극 검토하는 내용이다. 노사는 ‘고통분담’에 소극적이었고 정부만 나서서 ‘지갑’을 연 셈이다.
◇민주노총 지도부, 조합원 배려했지만…강경파 “왜 투쟁 안 하냐”며 발끈=사회적 대화의 핵심인 ‘고용과 임금’을 톺아보면 상당 부분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력이 담겨 있다. 민주노총은 실무협의에서 재계가 요구한 ‘임금 양보론’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을 강제하기 위해 임금동결 내지 삭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지만 이런 내용을 넣으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통과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대신 민주노총 지도부는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 추진 △공공병원 확충 △제조업 협력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합의안에 넣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강경파는 이마저도 반대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날 중집에서 합의안 추인이 무산된 후 이날 오전9시 중집을 다시 개최해 위원들의 의견을 물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8시20분께 ‘강성 산별’로 분류되는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위원장실을 항의 방문해 “‘노동계는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경우 협력한다’는 문건이 정리해고를 수용한 것이 아니냐” “고용유지에 강제성이 없다”며 합의안에 서명하지 말라고 성토했다. 급기야 ‘중집 참관권’을 주장하며 중집 장소에 들어가 “민주노총은 투쟁하는 조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집은 열리지도 못했고 결국 민주노총은 총리실에 불참을 통보했다.
◇표류하는 김명환 리더십…‘5자 합의’ 무게=사실상 민주노총이 합의안을 추인하기는 불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중집에서 “조만간 거취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강경파들이 “위원장직을 내놓으라”며 성토한 데 대한 대답이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직권으로 합의안을 추인하고 거취를 조합원 총투표에 부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민주노총은 2일 중집을 열고 합의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여부를 두고 토론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거취 문제도 이 결과에 따라서 판단하기로 했다. 다만 대의원대회 소집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대의원 대회에서 통과가 될지도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노동계 안팎에서는 “올해까지가 임기인 김 위원장이 직을 사퇴하고 조기 선거 체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결국 민주노총을 뺀 한국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의 ‘5자 합의’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합의문을 완전폐기할 경우 ‘사회적 대화 무용론’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계 고위관계자는 “민주노총 중집에서 합의안 추인이 안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민주노총이 결단해서 함께하면 좋겠다. 안 될 경우 다시 5자 간으로 마무리할 것인지는 정부에서 고민해볼 사항”이라고 말했다.
당혹스러운 정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애초부터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였던 만큼 민주노총이 최종 불참하면 무산되는 것”이라며 “아직 최종 무산은 아니며 추가 논의나 설득 작업을 이어갈 것인지는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결정은 총리실에서 내려야 한다”고 전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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