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타다 드라이버의 실제 사용자는 ‘쏘카’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나왔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를 지시 감독 여부로 보고 있는 근로기준법 판례에 따라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현행법에 따라 판단한 것이지만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플랫폼종사자 등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급증하는 현실을 반영해 노동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노위는 타다 드라이버 A씨가 근로자성을 인정해달라며 제기한 구제신청의 판정 요지를 1일 발표했다. A씨는 쏘카와 타다 애플리케이션 위탁관리회사인 VCNC,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B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노위는 1심인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뒤집고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또 해고기간 동안 일을 했다면 받았을 임금을 쏘카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는 A씨가 배차표를 보고 희망 근무일·차고지·근무시간을 선택해 배차를 신청했지만 회사가 최종 확정한 배차표에 따라 차량을 운행했으며 정해진 복장과 응대어를 사용해 근로기준법상 지시 감독 조건을 충족했다고 봤다. 중노위 관계자는 “배차표에 따라 차량을 운행했다면 일용직 근로자와 다를 게 없다는 게 위원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중노위는 특히 사용자를 ‘쏘카’로 특정했다. 중노위는 쏘카의 자회사인 VCNC가 타다 앱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위탁·대행했을 뿐이며 B사는 드라이버를 소개·공급하기만 했을 뿐이라고 봤다. 근무시간, 임금 산정 방법 및 근로조건 결정은 모두 쏘카가 담당했으므로 실사용자의 역할 역시 담당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사용자로 쏘카를 특정한 것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것”이라며 “중간회사가 100% 자회사이거나 실적이 없다면 쏘카를 사용자로 봤다”고 분석했다.
중노위의 판정은 대법원의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 판단 기준’을 준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근로자성의 판단 기준을 △사용자가 근로시간 및 장소 등 업무를 지시했는가 △정기적·고정적인 임금을 지급했는가 △작업도구를 지원받는가 등으로 본다. 이번 판정은 행정법원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기영석 세종 변호사는 “구체적인 지휘·감독 여부가 핵심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현재의 판단 기준을 그대로 플랫폼종사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온당한지 여부다. 일반 근로자와 달리 플랫폼종사자는 사용자가 제공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 여부를 정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 근로자와 업무 형태가 다른데도 기존의 근로기준법과 판례에 따라 일괄적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중노위의 결정을 따른다면 플랫폼 기업은 종사자에게 지시 감독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만큼 인사관리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직접고용이 아니면 기본적인 기사 교육도 사실상 못하게 하는 이번 판정에 대해 우려했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기사 교육이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활용한 업무지시, 드라이버평가제 등은 운송사업자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 수준이었다”면서 “이번 판결로 택시를 비롯한 다른 모빌리티 혁신에 있어 서비스 개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배달 업계에서도 우려의 시각을 내비쳤다. 배달 라이더를 노동자로 볼 경우 고용과 처우 등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요가 폭증한 배달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배달 업계 관계자는 “배달 라이더는 자영업 성격이 강해 근로자로 해석해달라는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다”면서도 “라이더가 근로자가 될 경우 수요 대응에 대한 민첩성이 떨어져 라이더 모집에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업무·시차출근제 등 새로운 업무 방식이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노동법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노동법 개혁의 수요는 높았지만 국회·정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서 선언적인 제도개혁의 필요성만 언급했을 뿐 실제로 행동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기준법은 산업(혁명)시대 제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새로운 업무환경과 일자리가 생기는 기조에 맞춰 노동법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정으로 플랫폼 업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현명 명지대 교수는 “국토교통부나 고용노동부가 플랫폼 노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마련하지 않은 채 기존 법안에 의존해 불법 여부만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업계에 불확실성만 줄 것”이라면서 “이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변재현·박준호·백주원·김보리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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