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만에 화상 투약기 논란이 재점화된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부터다. 최근에는 복지부 장관이 직접 도입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9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화상 투약기와 관련해 “시범사업이나 특례 규정, 폐해 등에 대해 검증해보고 싶은 게 복지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련 사업이 ‘규제 샌드박스’ 허가를 통과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는 일정기간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면제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험하도록 하는 제도로 관련 기계를 개발한 약사가 지난해 신청한 뒤 상정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화상 투약기는 지난 2013년 한 약사에 의해 개발돼 인천지역 약국에 설치됐다가 약사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철수됐다. 이와 관련해 법제처에서는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는 약국법에 위배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국회에서 약국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흐지부지됐다. 중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해당 사업이 운영 중이다.
정부 논리는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화상 투약기가 필요하단 것이다. 현재도 편의점에서 해열진통제 등 안전상비약을 구비하고 있긴 하지만 13개 품목으로 한정돼 있다. 화상투약기는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의사 처방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긴 하지만 품목을 60여 개로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더 편리하다.
또 지방자치단체 지원 및 약국의 자발적 참여로 심야시간이나 주말에도 약국을 운영하는 공공심야약국, 휴일지킴이 약국 등을 3년여간 운영해왔지만 참여 약국이 적고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약사들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보다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심야·주말 약국에 대한 지원을 늘려 활성화 시키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한 약사는 국민 청원을 통해 “복지부는 현행법상 합법인 공공심야약국과 관련해서는 한 번도 시범사업을 추진하거나 지역약사회들이 어렵게 지자체를 설득해 추진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준 적도 없다”면서 “합법한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고 폄훼하고 명백히 불법인 제도를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약사들이 우려하는 것은 화상 투약기가 도입되면 결국 대기업 자본이 투입되고 작은 약국들은 도태될 수 있단 것이다. 약사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약국업계까지 침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법이 바뀌어 약국 없이도 자판기만 놔도 약을 살 수 있게 되는 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서 “약 자판기는 대기업 배만 배불리고 국민의 의약품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한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공적마스크 공급에 최선을 다해온 약사들을 노력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화상투약기의 규제샌드박스 허용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날 열린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선 안건으로 오르진 않았지만 추후 상정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전국 8만명 규모 약사회가 반대하고 있어 통과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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