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교착 국면 속 안보 라인 개편이라는 어려운 퍼즐을 ‘대북통’ 박지원 전 의원의 국정원장 발탁으로 마무리했다. 북한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미국 정보당국과도 긴밀한 서훈 국정원장은 안보사령탑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기를 이끌 새로운 ‘대북 투톱’이 완성됐다. 이번 인사는 문 대통령이 북한에 다시 한번 대화의 손을 내밀고, 한반도 프로세스 추진에 흔들림이 없음을 강조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힘 있는 정치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해 독자적인 남북사업에도 다시 드라이브를 건다.
정의용 안보실장의 후임으로 서 원장을 내정한 것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예고된 인사다. 서 내정자는 북한과의 협상에 능하고, 문 대통령의 의중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최측근으로 꼽힌다. 지난 2004년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청와대에 파견돼 당시 시민사회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연을 맺고, 이후 두 번의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이어 문재인 정부 첫 국정원장으로 임명돼 평창동계올림픽부터 시작된 남북미 대화 국면과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물밑에서 긴밀히 조율했다. 2017년 북한의 화성15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고각 발사를 ‘대화 신호’로 분석한 것도 서 내정자다.
대표적 대북 라인이나 서 내정자의 북한 정보력을 미국이 신뢰하고 있어 미 정보당국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최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CIA 국장이었던 당시부터 김영철 전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구축된 ‘폼페이오-서훈-김영철’ 라인은 남북미를 잇는 비밀 채널로 꼽힌다. 서 내정자는 이날 인사 발표 직후 “우리의 동맹인 미국과는 더욱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가장 파격적이고 눈여겨볼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안보실장으로 일찌감치 서 내정자를 점찍어 뒀지만, 국정원장을 찾는 데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선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북관계를 이끈 박 후보자의 노련함을 활용하는 동시에 외부 출신을 발탁해 국정원 개혁을 마무리 지으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인사에 담겨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전문성이 높고 정치력을 갖췄다’는 점을 인사 배경으로 밝혔다. 박 후보자는 이날 “앞으로 제 입에서는 정치라는 정(政)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사기가 크게 저하된 통일부의 재건은 이 후보자가 맡게 된다. 관록의 중진 의원인 이 후보자는 ‘눈치 보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여권에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 전 안보실장에게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라는 자리를 맡겨 곁에 두기로 했다. 특히 임 전 실장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막후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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