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에 협상 복귀를 촉구한 지 하루만에 북한의 핵시설 활동이 포착됐다는 미 언론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미국 CNN 방송은 8일(현지시간) 민간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촬영하고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가 분석한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핵탄두 제조 의심 시설의 활동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CNN은 해당 위성사진이 이전에 공개된 바 없는 평양 인근 원로리 지역으로 전문가들은 이 시설이 핵탄두 제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해왔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연구소 교수는 “이 시설이 핵시설이라고 볼 수 있는 모든 징후를 가지고 있다”며 “자동차, 트럭, 컨테이너 등의 활동이 이 공장이 매우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설은 가동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여전히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CNN 보도는 전날 비건 부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의 카운터파트를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하루 만에 나왔다. 이는 북한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미 조야의 불신이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다시 꺼내든 것도 이 같은 미 조야의 강한 대북 불신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이날 미국과 일본, 호주 3국 국방장관의 화상 회담 결과를 발표한 공동성명에 북한에 대해 모든 범위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CVID를 달성하기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하고,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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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을 거치며 CVID 언급을 자제해왔다. 미 행정부는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측이 CVID에 대해 ‘항복문서에나 등장할 문구’라며 극도의 거부감을 표함에 따라 한동안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다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를 써왔다. 다만 이날 성명에는 보통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말할 때 사용돼온 ‘비핵화’(denuclearization) 대신 ‘폐기’를 뜻하는 ‘dismantlement’라는 단어가 삽입됐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방역 실패와 인종차별 문제 등으로 재선 정국에서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CVID가 아닌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수용할 경우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비건 부장관이 대화 메시지를 발신했음에도 군을 총괄하는 수장은 북한에 대한 강경발언을 서슴지 않는 점을 볼 때 미국은 북한과의 실질적인 대화 진전보다 추가 도발을 막는 상황관리에 주력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과 이란을 묶어 ‘불량국가’(rogue state)로 비난하며 이들의 공격행위 억지를 거듭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취임 1년을 즈음해 국가국방전략(NDS) 목표 달성을 위한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군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NDS 성과에 더해 우리는 또한 지난 1년간 무수한 국제적 사건에 대응해 왔다”며 수십명의 핵심 테러리스트를 제거한 테러방지 작전 수행 및 지원, ISIS(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 격퇴, 페르시아만과 남중국해에서의 항행 및 상업의 자유 보호 등 국방부 업적을 나열했다. 이어 “비슷한 부류인 중국, 러시아 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공격적인 활동들을 억지해왔다”고 밝혔다.
앞서 에스퍼 장관은 지난 2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이 주최한 국방전략(NDS) 관련 기조연설 및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도 북한을 ‘불량국가’라고 지칭한 바 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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