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7월 10일 밤 11시 38분 뉴질랜드 오클랜드항. 날카로운 폭발음이 심야의 적막을 찢었다. 발생 지점은 국제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의 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호. 선장과 선원 10명이 배의 피해를 살피던 11시 47분께,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선장은 즉각 피신 명령을 내렸으나 한 사람을 못 찾았다. 포르투갈 태생의 네덜란드 사진작가인 페르난도 페레이라(35세)가 사진 장비를 챙기려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죽었다. 2차 폭발 4분 후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항구에 가라앉았다.
두 번이나 폭발물을 터트린 악의적 테러의 범인은 누구일까. 프랑스가 의심받았다.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남태평양에서 진행될 프랑스의 핵 실험을 방해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아무리 성가셔도 그런 식으로는 대응하지 않는다’며 펄쩍 뛰었다. 테러 국가로 지목받아 자존심 상한다는 반응까지 보이던 프랑스 정부는 며칠 뒤부터 입을 다물었다. 뉴질랜드 경찰이 스위스 신혼부부로 위장한 프랑스 정보기관(DGSE) 소속 정보원 2명을 체포하면서부터다. 사건에 분노한 뉴질랜드 국민들의 제보가 잇따르며 전모가 드러났다.
프랑스 대외안전총국은 그린피스의 활동을 원천 봉쇄하려고 레이보우 워리어호를 침몰시켰다. 부인하던 프랑스 정부는 르몽드 등 국내 유력지에 사실 기사가 나가자 일부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거짓을 늘어놓았다.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은 ‘해군이 작전계획을 올렸고 새로 사귄 애인과 사랑에 빠진 국방장관이 업무를 소홀히 다뤄 이런 비참한 결과가 나왔다’며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20년이 지난 후 미테랑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프랑스는 살인죄로 복역하던 정보원 2명도 데려왔다. 뉴질랜드 제품 수입을 막겠다는 협박이 통했다.
배를 폭파해 사람을 죽이고 우방을 협박한 프랑스는 테러국가와 다름없다는 오명을 얻었다. 반면 그린피스는 주목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성금이 많아져 보다 크고 좋은 감시선도 사들였다. 그린피스는 지금도 핵실험에서 포경 금지, 핵물질 방류 등을 감시한다. 우리와도 몇 차례 스쳤다. 녹색성장을 표방하던 이명박 정부가 그린피스의 입국을 거부해 국제적 논란에 오른 적이 있다. 사고 당시 15개국이던 사무소가 이젠 55개국으로 늘어났다. 만약 뉴질랜드 국민들이 ‘레인보우 워리어’호 침몰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적극적으로 제보하지 않았다면 국제 환경운동의 성장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침묵하지 않을 때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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