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았던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에서부터 연세대 정문까지 이어지는 400m 길이의 거리에 자리한 약 30개의 상점은 문을 연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둔 상점들을 지나칠 때면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이 내뿜는 냉기가 한몸에 느껴졌다. 예년 같으면 에너지 절약에 역행하는 행위로 손가락질을 받았을 터. 하지만 올해는 이를 지적하는 이도 없고 상점 주인들의 얼굴도 떳떳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바꿔놓은 ‘개문냉방(開門冷房)’의 풍경이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만난 소상공인들은 수개월째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올해에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연 채 에어컨을 틀고 영업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30대 김모씨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떨어져서 다른 때보다 문을 오래 열어두게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아무래도 문을 열어놓아야 음악 소리도 잘 들리고 시원해서 고객이 많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한몫했다. 인근 카페 점원 최모(28)씨는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환기를 안 하면 침방울이 퍼지기 쉽다는 얘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다 보니 손님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가 많아 웬만하면 문을 열어놓게 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상점들은 엄연히 단속 대상이다. 특히 에너지 수급 차질의 우려가 있을 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에너지 사용 제한조치’를 실시하면 적발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실제로 개문냉방으로 낭비되는 전력은 적지 않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문을 열고 냉방했을 때와 그렇지 않은 경우 에너지소비율은 최대 3.4배의 차이가 났다. 이에 산업부와 에너지관리공단 등은 매년 절전 캠페인을 통해 문을 닫고 냉방하는 상점들에 ‘착한가게’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에너지 절약을 권장해오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우려 탓에 관련 단체와 당국도 개문냉방 관리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감염 원인인 비말이 에어컨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질 수 있다는 우려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5월 다중이용시설에서 에어컨을 사용할 경우 최소 2시간마다 1회 이상 환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사용지침을 내놓았다. 서울 시내버스들도 올해는 서울시가 허용함에 따라 에어컨을 켠 채 창문을 여는 개문냉방으로 운행하고 있다. 개문냉방에 부정적이던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19 이슈로 문을 열고 냉방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산업부도 올해는 온라인으로 절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대면 캠페인이 어려워져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며 “방역당국의 지침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전력 낭비를 경계하면서도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실내에서는 환기와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감염방지대책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술 경희대 환경학 교수는 “에어컨을 켠 채로 환기가 안 되는 환경에서 비말은 미세먼지처럼 작은 입자가 돼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다”며 “이 경우 바이러스 농도가 높아질 위험이 있으니 환기를 최대한 자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시 “에어컨 바람을 무풍이나 약풍으로 하면서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는 환기를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는 식당의 경우 좌석 수를 줄이고 대각선으로 앉는 등 거리두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