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에서 친모와 계부의 끔찍한 학대에 못 이겨 맨발로 도망친 아이, 쓰레기로 가득했던 서울 동대문구의 한 가정에 방치돼 있던 한 아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아동학대 사건은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다. 대중은 부모가 가해자라는 점에 분노하고, 속속 드러나는 잔인한 행각에 또 다시 분노한다. 하지만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가해자인 부모가 가정 내에서 저지르기 때문에 집 밖의 경찰은 쉽게 인지하기 어렵다.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들이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지난 8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만난 강북서 학대예방경찰관(APO) 강미정(33) 경사와 권은지(30) 경장도 아동학대의 특성에 대해 “아동학대는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찰에 신고조차 되지 않는 ‘암수범죄’가 많다”며 “혹시 발견하지 못한 아동이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처음 도입된 APO는 가정폭력과 아동·노인학대 등의 사건을 총괄하며 사후대책을 마련해 재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경찰관이다.
이들은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신고를 접수해 출동하더라도 대부분 한 가정 내의 일이라서 어디까지 경찰이 개입해야 할지 정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아 토로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학대를 막아내야 하는 게 경찰의 본연 업무지만, ‘가정문제’라는 이유로 개입 범위의 기준을 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선 지구대·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강 경사와 권 경장이 APO에 자원한 것도 이런 어려움을 전문성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다.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권 경장은 “일선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게 가정폭력 사건인데, 워낙 복잡하고 민감한 사건이 대다수여서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전문성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APO에 자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성을 갖춘 APO가 됐지만 경찰의 개입 범위를 정하는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학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수준이 높아져 학대의 범위가 넓어진데 반해 아직 일부 부모들은 학대가 아닌 훈육이라고 생각하는 등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 경장은 “막상 신고가 들어와 나가보면 정작 학대 행위자인 부모와 보호자가 ‘이게 무슨 아동학대냐’며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최근 논의가 진행 중인 ‘자녀 체벌금지 법제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법제화를 할 경우 체벌과 훈육에 국가가 개입하는 셈인데 어떤 행위까지 훈육이 아닌 체벌로 볼 것인지 등의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현장에서의 혼선은 더욱 가중될 거란 이유에서다. 강 경사는 “체벌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지 국가가 명확히 해야 일선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관들이 혼란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경사와 권 경장은 시민들이 학대 의심 정황을 포착했을 때 주저 없이 112로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시민들의 자발적 신고로 사건을 인지할 수 있어야 APO가 보다 적극적으로 학대 현장조사를 통해 학대 우려와 가능성을 평가해 피해를 막을 수 있어서다. 강 경사는 “아동학대 사건은 재발률이 높고 학대가정이 원가정으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우리의 노력으로 학대 사건이 근절돼 다시는 APO가 연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