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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칼럼] 민주노총, 협상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지난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서명식 15분을 남겨놓고 불참을 통보했다. 총리를 비롯한 노사정 대표와 국내외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의 조합원들이 그의 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당초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자신들의 요구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밖에서 진행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자기가 차린 밥상을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더욱 기가 찬 것은 경사노위도 민주노총의 요구에 따라 명칭과 구성을 바꾸며 신장개업했지만 결국 내부동의를 받지 못해 민주노총만 빼고 지난 2018년 11월 뒤늦게 출범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방침이 번번이 뒤집히는 이유는 투쟁파의 저항 때문이다. 이들은 협상파가 시도하는 모든 타협은 야합으로, 협력은 배신으로 매도했다. 숫적으로 불리하면 불법과 폭력을 불사하며 사회적 대화를 방해했다. 1998년 배석범 당시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타협에 도장을 찍었다는 이유로 대의원대회에 난입한 해고자들의 각목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들은 토론은 고사하고 안건 설명 조차 못한 채 쫓겨났다. 2005년 사회적 대화 복귀를 결정하려던 임시대의원대회도 소화기를 뿌려대는 반대파들의 단상 점거로 찬반 투표도 못하고 무산된 바 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또다시 일단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중앙집행위원회 진행을 방해하고 위원장 감금을 불사하며 노사정 합의를 막아선 것이다.

민주노총이 출범 25년 만에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 노총의 자리에 올랐다고 자랑하지만 지도부가 밖에서 제구실을 하려면 두 가지 조건부터 충족해야 한다. 첫째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합리적인 토론과 민주적인 투표는 고사하고 공식 회의조차 폭력으로 유린되는 조직의 대표가 누구와 대화와 타협을 말할 수 있겠는가. 둘째 협상과 타협을 모르는 노동조합은 노조가 아니라 한낱 투쟁조직에 불과하다는 각성이다. 최강 현대자동차 노조도 매년 회사 사정을 보아가며 협상하고 타협한다. 올해는 고용유지를 위해 임금을 동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보통 조합원들의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투쟁파는 노사정 합의안을 폐기하고 최저임금 25% 인상과 해고 금지를 위해 지도부가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런 비현실적 투쟁에 동조하는 산하 조직이 얼마나 될까. 김명환 집행부가 진퇴를 걸고 오는 20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합의안에 대한 추인을 받아보겠다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찬반을 떠나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과 폭넓은 공론화는 민주노총이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민주노총이 투쟁 조직에서 협상 조직으로 진화해야 사회적 대화도 정상화되고 한국 노사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는 그 내용 못지않게 결론에 이르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이 보여준 대범한 태도나 총리의 인내, 재계 리더들의 절제된 언행들이 축적돼 결국 사회적 대화와 노사관계가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민주노총이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향후 25년의 한국사회는 노조가 투쟁으로 돌파하던 과거와 전혀 다를 것이다. 성장률이 1~2%를 오르내리고 빚에 짓눌린 초고령 사회의 노쇠한 경제일 가능성이 높다. 노조 강세의 전통 제조업은 현상유지에 급급할 것이고 첨단 신산업의 신흥 강자들은 노조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투쟁의 주력군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은 속속 은퇴하는 상황에서 노조는 디지털 세대에게 새로운 서비스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에 남은 선택은 미국처럼 주변 세력으로 밀려나거나 일본처럼 어용화하거나 독일처럼 타협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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