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역대급’ 규모로 커진 2021년 전국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대한민국 제1·2 도시 수장들이 연달아 성추문으로 퇴장한 데 이어 인구 1,300만명의 경기도지사까지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직을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재보궐선거 판이 커지자 당내에서는 ‘중대 범죄로 인해 직을 잃는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에도 불구하고 후보를 내야 한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다.
14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은 내년 재보궐선거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당 핵심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보궐선거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피해 호소 여성을 중심으로 우선 생각하고, 이러한 상황들이 가라앉아야 재보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당 지도부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의혹에 대한 대응방향을 논의했으나 보궐선거 전략은 결정하지 못했다. 한 최고위원은 “우선 미투 의혹이 정리된 후 당의 공식적인 사과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는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공석으로 각각 인구 972만명, 340만명의 서울시와 부산시가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2만7,000여명이 거주하는 경상남도 의령도 이선두 전 군수가 지난 3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직을 상실해 새 군수를 뽑아야 한다. 인구 1,333만명의 거대 지자체인 경기도 역시 이재명 지사의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재보궐선거를 치를 수 있다. 도합 2,649만명으로, 인구 절반 이상이 지자체장 선거에 뛰어드는 셈이다.
민주당은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낼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했을 때는 당내에서 “후보를 안 내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은 13일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고, 다음 선거 때 후보를 내 시민께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서울시장 선거는 다르다. 박 시장이 미투 의혹으로 고소되기는 했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수 성향이 짙은 부산과 달리 진보세가 강한 인구 1,000만의 서울을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 상황에서는 여성 의원을 시장 후보로 내 승부를 보는 게 더 맞다”고 전했다.
재보궐 후보 추천 여부는 당권 경쟁으로까지 옮겨붙었다. 김부겸 전 의원은 “당원 동지들의 견해가 제일 중요하다”며 공천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우리 당 당헌에는 ‘민주당이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않겠다’라고 돼 있지만 대한민국의 수도와 제2의 도시 수장을 뽑는 선거인 만큼 당의 중요한 명운이 걸렸다고 할 만큼 큰 선거”라고 설명했다. 이낙연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후보 공천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기가 되면 할 말을 하겠다”고 답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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