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59> '대륙 국가'의 불가피한 재앙…國家를 세우게도, 망하게도 만들어

■ 남부 지방을 휩쓰는 대홍수

지난 13일 중국 장시성 주장시를 가로지르는 장강 변의 둑이 홍수로 무너져 있다. /AFP연합뉴스




#.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쯔진청) 안에는 ‘대우치수도옥산(大禹治水圖玉山)’이라고 불리는 옥 조각품이 있다. 이름 그대로 중국 고대 ‘우(禹)’의 치수사업을 시각화해 옥에 조각한 것이다. 옥 조각의 높이는 2.24m, 무게는 5,000㎏에 달한다. 우는 중국 고대의 전설 속에 사람으로 중국사(史)에서 첫 세습왕조인 하(夏)왕조를 창시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최초 조상인 셈이다. 한 왕조를 세울 만한 공로는 그가 당시 최대의 국가사업이었던 황하(黃河·황허)의 치수에 성공했다는 것에서 나왔다. 걸핏하면 범람하는 황하의 범람을 안정시킨 것이다. 우의 황하 치수사업은 이후 전설처럼 내려왔고 이것이 그림으로 그려졌다가 옥에 새겨진 것이 이 ‘옥산’이다. 옥 조각을 주문한 사람은 18세기 만주족의 청나라 극성기를 이끌었던 건륭제다. 그는 이 옥산을 보면서 정치와 생활에서 경건함을 되새겼다고 한다.

#.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2020년 7월 다시 홍수가 문제다. 이번에는 장강(長江·창장, ‘양쯔강’으로도 표현)에서 대홍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6월 초부터 장강 등 중국 남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중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2일 현재 최소 3,800만명의 이재민과 141명의 사망·실종자, 직접적인 재산피해만 822억위안(약 14조원)이 발생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치수 사업의 성공은 정부와 권력자의 정당성 문제가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이어 대홍수라는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미래도 2020년 장강이 결정할 수 있다. 일단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이번 대홍수가 중국에서 직전의 최악이었던 1998년 대홍수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최악의 홍수를 당한다는 것은 곧 집권세력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지난 12일 “지금은 홍수 방지의 결정적 시기”라면서 적극 대처를 지시했지만 아직 현지를 방문하지는 않았다.

자금성에 있는 ‘대우치수도옥산’의 모습. 청나라 건륭제때인 18세기에 ‘우’의 황하 치수사업을 옥에 조각한 것이다. 높이는 2.24m, 무게는 5,000㎏에 달한다 /최수문기자


중국에서는 역대로 재난이 빈발했는데 그중에서도 대홍수는 피해 규모나 지역에서 다른 재난을 능가했다. 한국이나 일본을 포함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홍수가 있겠지만 하나의 대륙이 국가인 중국은 스케일이 다르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현상이다. 땅덩이가 큰 상황에서 비가 넓은 지역에 장기간 내릴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당연히 아래로 흐르는 성질의 물은 저지대에 모이게 된다. 중국식으로 이를 표현하면 전반적으로 평범한 비라도 하류 평지는 큰 물을 만나고 오늘 해당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아도 강의 수위는 점점 올라간다.

결국 주로 평야인 이들 하류 지역은 홍수로 범람하게 된다. 강이 길기 때문에 물은 바다로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홍수가 몇날, 몇달 동안 마을과 논밭에 가득 찬 채로 피해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6월초 폭우가 시작됐는데 50일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강과 호수의 수위는 올라가고 있다. 상류에서 내린 빗물이 계속 하류에서 고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어에서 강 이름에 ‘강(江)’과 ‘하(河)’가 함께 사용되는데 이는 언어습관 때문이다. 중국 한족들의 본적인 북부는 ‘하’를 사용하는 대신 이후에 복속된 남부는 ‘강’을 주로 사용한다.

중국 고대에는 상대적으로 황하의 홍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중국의 중심이 황하 유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적 재난 방식은 황하 유역도 마찬가지다. 수천㎞에 걸쳐 오는 비는 황하로 수렴되고 하류에서 수압이 커져 결국 둑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황하는 산둥성 북부 둥잉시 인근에서 발해만으로 흘러든다. 물론 역사상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고고학 유적을 보면 황하의 물길은 종종 방향을 바꾸었다. 산둥성의 한 가운데에 ‘태산’이라는 큰 산이 있는데 주위는 거의 완만한 평원이다. 한때는 태산의 위쪽으로 흐르던 황하가 대홍수로 둑이 터지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태산의 아래로 흘렀고 상황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또 바뀌었다. 역사상 10번 가량의 경로변경이 있었다고 한다.

황하의 가장 최근 대규모 경로 변경은 청 함풍제 시절인 1853년에 일어났다. 그전까지 태산 아래로 흘러 장쑤성에서 동중국해로 빠져나갔던 황하가 이번에는 태산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변화가 대략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 황하라는 거대한 강의 물길 변화가 산둥성 등 인근 지역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을 지는 상상조차 쉽지 않다. 홍수로 인한 수십만명의 직접적인 사망자와 함께 살아남은 수백만명도 농토의 파괴에 따른 기근에 시달렸을 테다.

역사상 황하의 범람은 국가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853년의 홍수와 황하의 경로변경에 따른 재난은 당시 지배체제의 마비를 가져왔다. 광시성에서 시작된 작은 농민반란이었던 태평천국운동이 이러한 재난을 타고 중국 전체로 확대돼 청 왕조를 거의 망하게 할 뻔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황하의 범람으로 피해를 입은 산둥 지역 사람들은 대규모 인구이동을 진행해 당시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만주로 이주했고 현재의 중국 인구 지도를 완성했다. 산둥성은 그 이후로 주기적으로 황하가 범람하는 홍수 피해를 입었고 이들 산둥인들이 한반도로도 이주해 현재 화교의 상당 부분이 이 지역 출신인 이유가 됐다.

장강 유역의 홍수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세기 들어 세계 최악의 홍수로 기억된 것이 장제스 총통의 중화민국 시절인 1931년 장강 대홍수다. 이때 홍수에 이은 기근·전염병에 의해 최대 40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미 당시까지 20년 이상 군벌전쟁에 지친 상황에서 대홍수는 치명타였다. 일본이 그해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이듬해 1월 상하이사변도 도발하는 데 이는 대홍수로 국력이 쇠퇴한 중화민국의 빈틈을 노렸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홍수는 동북아의 정치질서까지 바꾼 셈이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1998년 8월 13일 후베이성을 방문해 대홍수의 수방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 /CCTV 캡처




이른바 ‘신중국’이라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대홍수는 끊이지 않았다. 이전 황하가 대홍수의 주 무대였다면 점차 장강 유역으로 이동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라고도 해석한다. 황하 유역은 점차 건조 기후대로 진행하면서 강수량이 적어지는 대신에 장강 유역의 강수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최근 기억하는 대홍수는 앞서 이야기한 1998년 대홍수다.

1998년 6월부터 8월까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장기간 폭우에 따른 대홍수로 총 2억2,0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4,15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접 경제 손실은 1,660억 위안(약 28조원)에 이른다. 당시 장쩌민 전 국가주석까지 현지에 내려와 수방 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물론 그동안 중국 정부가 방재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장강 유역의 치수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은 2006년 싼샤(三峽·삼협)댐의 완공이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이 댐의 건설에 대해 당초 중국 내외에서 반대가 심했다. 다만 홍수방지 측면에서는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장강의 중류인 후베이성 이창에 건설된 이 댐으로 적어도 장강 상류의 홍수가 하류를 직접 타격할 위험성을 줄었다. 싼샤댐 자체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루머가 주기적으로 돌기도 하지만 중국 당국은 ‘100만년 만에 한번 올 수 있는 폭우’도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홍수에서도 싼샤댐은 상당한 수량을 가둬 경제중심지인 장강 하류의 홍수 피해를 줄이는데 일정한 도움이 됐다.

물론 이러저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대홍수 우려가 줄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장강 유역의 올해 6월 1일∼7월 9일 평균 강수량은 369.9㎜로, 1998년 같은 기간보다 54.8㎜이 더 많다고 중국 기상대는 집계했다. 기후변화로 폭우의 집중도와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관건은 집중호우에 대한 국가의 대응체제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리는 비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결국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치수 사업은 댐을 만들거나 둑을 높여 직접적인 수해를 방지하는 것과 함께 빗물을 자원으로 삼아 재활용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중국 군인들이 13일 장시성 주장시의 둑 쌓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AFP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지난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른바 ‘스펀지도시 (海綿城市·The Sponge City)’ 프로젝트가 재부각되는 이유다. 중국이 구상한 스펀지도시란 홍수 등 빗물을 스펀지처럼 탄력적으로 막는 물순환 도시 개념이다. 즉 지상 및 지하에 시설을 구축해 빗물의 흡수·저장·정화·이용·배출 등으로 시스템화 함으로써 전체 강수량의 70%를 땅에 흡수하거나 재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구상된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전체 658개 도시의 20%가 목표수준에 도달하게 하고 2030년까지는 비율은 80%로 끌어올릴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 올해까지 매년 4,000억 위안, 이후 2030년까지는 매년 1조6,000억 위안의 투자가 각각 필요하다고 예상됐다.

다만 이 사업은 막대한 투자규모에도 불구하고 당장 수익이 날 가능성 없어 지난 2017년 ‘정부업무보고’ 이후에는 중국 정부의 직접적인 관심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홍수의 영향으로 경기둔화를 방어할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