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시장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 경제지표인 ‘케이스실러지수’를 개발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최근 미국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속될 경우 도시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러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도시생활의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교외에 위치한 주택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시장에 공급한 막대한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올렸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이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쏟아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백약이 무효였던 집값을 잡은 것은 코로나19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전염병에 취약한 도시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채택하고 위성 오피스를 확대하는 등 도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집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미국 주요 대도시의 집값이 하락하고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 주택임대 플랫폼인 줌퍼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방 한 개짜리 임대주택 임대료는 6월 1년 전보다 11.8% 하락했다. 월간 하락폭으로는 사상 최대다. 샌프란시스코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성장에 힘입어 수년간 집값이 고공행진을 벌였으나 기업들의 재택근무 확대로 임대주택 수요가 줄고 임대료가 하락하고 있다. 또 미국 부동산 중개·감정업체 더글러스엘리먼·밀러새뮤얼에서 발간한 주택임대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6월 한달간 뉴욕 맨해튼의 임대주택 공실률은 3.67%로 치솟았다.
코로나19로 주택투자시장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몇년간 기관투자가들에 가장 인기 있는 투자상품 중 하나는 미국 멀티패밀리였다. 멀티패밀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대아파트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 회사 CBRE에 따르면 미국 멀티패밀리 공실률은 지난해 3·4분기에 3.6%로 25년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염병에 취약한 도시 공동주택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실제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전 세계 774명의 사망자 중 무려 42명(5.4%)이 홍콩 아모이가든아파트 한 곳에서 나오기도 했다. 공동주택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대신 한적한 교외의 단독주택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이 4월 말 미국인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도시 거주자들의 39%가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지역으로 이사할 생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3월 이후 뉴욕을 떠나 교외지역인 코네티컷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전년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코네티컷은 올해 5월까지 신규주택 허가가 1,900여건 신청됐는데 이는 5년 만에 최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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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코로나19 이후 주목해야 할 투자처로 단독주택을 꼽으며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단독임대주택리츠인 ‘인비테이션홈스’를 추천하기도 했다. 국내 기관투자가 중 한 곳도 최근 단독임대주택리츠인 ‘아메리칸홈스포렌트’에 투자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재편도 가속화되고 있다. 호텔과 리테일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반면 물류센터와 데이터센터는 비대면 시대의 수혜자가 됐다. 6월 코로나19로 미국의 대형 리테일사업자인 사이먼프라퍼티그룹과 터브먼센터스의 36억달러 규모의 대형 인수합병(M&A)이 무산됐다. 또 전 세계에서 부동산자산운용 규모 1위인 미국 사모펀드운용사 블랙스톤은 호텔 인수 당시 빌린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호텔과 리테일 투자는 사실상 올스톱 된 상태다.
반면 물류센터와 데이터센터는 몸값이 치솟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물류센터투자리츠인 프롤로지스의 주가는 15일(현지시간) 주당 92.10달러로 마감하며 연초 대비 상승했다. SL그린·보네이도·사이먼프라처티 등 오피스와 리테일에 투자하는 리츠가 코로나19 이후 크게 하락한 후 아직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또 지난달 CBRE가 아시아퍼시픽 지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데이터센터 투자 선호도가 3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진행한 같은 조사에서는 18%였으나 1년 사이 데이터센터를 찾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5세대(5G) 이동통신,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발달로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경제전환이 가속화돼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부동산투자 시장의 큰손인 블랙스톤은 최근 중국 1위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체인 21비아넷에 1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데이터센터 투자를 위해 부동산자산운용사들과 IDC 업체들이 손을 잡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투자자산이 달라지는 것뿐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시장에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으로 향후 우량자산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부동산자산운용사 대표는 “통상적으로 위기 후에는 지역별·자산별로 차별화가 나타난다”며 “지금은 과잉공급과 버블 등 구조적인 경기둔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우량자산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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