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울먹이는 얼굴을 보며, 내가 뭘 사과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미안합니다. 열심히 살아온 아저씨가 이런 일을 당하셔서 정말 미안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것이 미안합니다.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행복해질 시간도 없이 이렇게 되셔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녀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김동식,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2018년 요다 펴냄)
주물공장 노동자였던 김동식은 이른바 문단의 등단절차를 밟지 않고도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초단편소설 중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웬 노인이 우리 회사 앞에 주차를 했다. 말단사원인 ‘나’는 노인에게 심하게 군다. 스트레스를 풀고 훈계한다. 노인은 힘없이 사과한다. 그렇게 어린 사람에게 욕먹고 굽신거리다 돌아가는 길, 노인은 뺑소니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얼마 후 노인의 딸이 찾아와 남자에게 사과해달라고 말한다. 블랙박스를 보니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대화한 사람이 당신이라고, 내 아버지는 그렇게 막 대해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남자는 어이가 없다. 이 소설 제목은 남자의 의문에서 나왔다. ‘내가 뭘 사과해야 하는가?’ 주변 사람들도 이상한 여자니까 사과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를 함부로 대했다는 것을. 그의 마지막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마침내 남자는 병원에 간다. 한 생이 파탄나 쓰러진 모습을 직시하는 순간, 남자는 고개 숙인다. 자신이 한 인간의 고통 앞에 무심하고 무례하고 무책임했던 세계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딸이 원한 것은 그저 이 엄청난 고통에 대한 공감과 애도였다. 세계는 거대한 병원이어서 숱한 불행과 폭력 앞에서 범죄자는 뺑소니치고, 사과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쓰러져 누워 있다. 이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할 수만 있다면. “미안합니다.”/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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