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만으로도 귀에 익숙한 음악이지만, 그 울림은 여느 때와 달리 더 깊고 웅장했다. 어떤 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또 어떤 이는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공간을 감싸는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선율에 빠져들었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60주년과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음악회 ‘비바!베토벤!(VIVA! Beethoven!)’이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음악회는 1960년 8월 1일 창간한 서울경제가 지난 60년간 꾸준한 신뢰와 성원을 보내준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로, 서울경제 창간 60주년과 때를 같이한 ‘악성’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베토벤을 주제로 꾸려졌다. 코로나 19와 경기 침체 등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상황에서 불굴의 의지로 가혹한 운명에 맞서 싸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명곡들은 객석을 채운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충분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무대는 지난 60년간 서울경제에 힘을 보태준 독자들은 물론이요, 서로에게 힘이 되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있는 모든 국민에게 전하는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였다.
공연 1부는 지휘자 류성규가 이끄는 트리니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으로 시작했다. ‘어둠과 고난을 헤치고 광명과 환희로’라는 베토벤 고유의 모토가 응축된 이 작품은 특히 코로나 19 위기 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 상황과 맞물려 객석에 큰 울림을 줬다. 청각 장애와 신분의 장벽,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 등 숱한 역경에 굴하지 않은 베토벤의 처절한 투쟁이 담긴 선율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숨죽인 채 악곡이 펼쳐 내는 감동의 드라마에 몰입했다.
2부의 바통은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이어받았다. 열 살 때부터 발레리 게르기예프·정명훈 등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와 협연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아티스트인 임주희는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카리스마와 연주 실력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1악장)은 ‘황제’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진 곡으로,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을 때 베토벤이 사방을 감싸는 폭탄 소리 속에서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주희는 열정적인 연주로 ‘이 위기를 함께 이겨내자’는 용기의 메시지를 선사했다.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무대를 수놓았다. 소프라노 오신영은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내 임이라고 불러서’를 선보였고, 테너 진성원은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도 유명한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를 세계 최초 오케스트라 버전 반주에 맞춰 불렀다. 이어 두 사람은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의 ‘당신은 나의 모든 것’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줬다. 테너 진성원과 김래주, 하세훈은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 레온카발로의 ‘아침의 노래’, 푸치니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의 아리아로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4명의 성악가는 루이지 덴차의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함께 열창하며 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얌모, 얌모, 꼽빠 얌모 야(Jammo, jammo, ncoppa jammo ja·가자 가자 꼭대기로)’라는 익숙하면서도 경쾌한 노랫말에 관객들은 모처럼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잊고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음악을 즐겼다. 공연장을 찾은 한 관객은 “순탄치 않았던 베토벤의 인생 때문인지 그의 음악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며 “일상의 에너지를 얻고자 음악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관객은 음악회 안내가 나간 뒤 직접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티켓을 요청할 만큼 좋아하는 아티스트와의 오랜만의 만남에 열의를 보였다. 이날 음악회는 철저한 방역 속에 진행됐다. 공연장 입장 전에는 QR코드를 활용한 문진표 작성과 열화상 카메라를 통한 체온 측정이 이뤄졌고, 공연장 안에서는 객석 간 띄어 앉기를 시행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