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햄프셔주 포츠머스. 1194년 ‘사자왕’ 리처드 1세가 내린 왕실 칙허(Royal Charter) 이래 군항으로 성장한 도시다. 세계 최초의 건선거(dry dock)도 여기서 나왔다(1495년). 영국 최대 군항답게 왕립해군박물관에는 헨리 8세의 초호화판 메리 로즈호와 최초의 철갑선 워리어호 등 시대를 풍미한 전시물이 즐비하다.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관광객들의 발길은 유난히 한 함정에 몰린다. 빅토리함(HMS Victory). 트라팔가르 해전(1805년)에서 승리 직전에 전사한 허레이쇼 넬슨 제독의 기함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령 현역 함정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2005년 트라팔가르 해전 200주년 관함식에서는 사열함대를 이끌었다. 상징적이지만 2012년에는 해군 장관의 기함으로도 지정됐다. 해군 장관은 주 1회 참모들과 함께 빅토리함에서 식사를 나눈다. 명장에 대한 기억부터 거대한 목조 전열함, 장관의 식사까지 모든 게 관광상품이고 돈이다. 정작 빅토리함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따로 있다. 세 가지다. 훈련과 경제력·준비태세.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전투함은 31척으로 프랑스·스페인의 33척에 밀렸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양측 함대가 마주 보고 줄지어 달리며 포격을 주고받으면 승패가 불확실한 상황. 넬슨은 적 함대 한가운데를 ‘T자’형으로 들이치는 종심타격 전법을 택하고 자신이 선두에 섰다. 자칫 영국 함정이 차례차례 피격될 수도 있는 이 전법의 최대 관건은 민첩한 기동을 위한 통신과 빠른 포격. 영국 수병들은 깃발 수신호에서 포격까지 제 역할을 다해냈다. 대포와 포탄의 질이 좋았고 평소 훈련량도 많았던 덕분이다. 뛰어난 경제력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공채 금리는 연 2.74%. 프랑스는 4~5배 금리를 줘도 자금조달이 어려웠다.
빅토리함은 준비태세의 상징이기도 하다. 1758년 발주해 선체 기공에 들어간 게 1759년 7월23일. 진수까지는 6년이 걸렸다. 7년 전쟁 종결 이후에야 목재 공급이 재개돼 1765년 배를 띄웠으나 이번에는 쓸 곳이 없어졌다. 13년 동안 미취역 예비함이던 빅토리함은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1778년 현역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폐선 논란도 있었지만 1800년 대규모 수리를 거쳐 일선함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른 나라라면 거대한 예산이 드는 함정을 미리 건조하고 준비하는 게 가능할까. 다산 정약용의 말씀이 떠오른다. ‘군비는 100년을 안 쓸지언정 단 하루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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