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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기자 시절이 황금기" 이수영 KAIST발전재단 이사장 과학인재 양성에 760억 내놓아

23일 KAIST와 676억원 출연 '이수영 과학교육재단' 설립키로

지난 8년간 총 766억원을 KAIST 통해 과학인재 양성에 내놓아

"과학 패러다임 바꾸고 인류 난제 해결할 연구자 키우겠다"

이수영(왼쪽 세번째)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이 서울경제신문 기자 시절이던 1980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이병철(〃 두번째)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네번째) 현대그룹 회장 사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수영 이사장




“나는 아직도 서울경제신문이 친정이고 그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고 되뇌는 전직 기자가 사업에 크게 성공한 뒤 무려 760억원이 넘는 거액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했다.

바로 이수영(84)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이 그 화제의 주인공. 그는 23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개교 이래 최대 규모인 676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2012년 80억원과 2016년 10억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을 KAIST에 유증(遺贈·유언을 통한 재산기부) 하기로 한 뒤 실제 기부했고 이번 재단설립 추진까지 과학인재 양성에 내놓기로 한 금액은 총 766억원에 달한다.

그는 이날 “KAIST에서 국내 최초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KAIST는 기부금을 활용해 ‘KAIST 싱귤래리티 교수’를 육성하기로 했다. 과학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인류 난제를 해결할 연구, 독창적인 과학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연구를 할 교수를 지원한다. 첫 10년간 논문·특허 중심의 연차 실적평가를 유예해 맘껏 연구하도록 한 뒤 이후 실적평가를 통해 10년 연장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서울에서 4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법고시에 한 번 낙방한 뒤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심신이 피폐해졌다’며 기자의 길을 택한다. 1963년 서울신문 견습기자 4개월만에 회사를 나와 다음해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가 4년간 근무한 뒤 1969년 서울경제신문 경력기자로 입사해 재계 등을 출입하며 맹활약한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노조 설립에 적극 나섰다는 오해를 받아 강제해직될 때까지 12년 가까이 서울경제신문에서 다양한 재계·금융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다양한 재계인사들을 취재했다. 서울경제신문은 그가 강제해직된 뒤 신군부로부터 같은 그룹이었던 ‘한국일보’ 대신 강제폐간 조치를 당하게 된다.

이수영(오른쪽)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이 신성철 KAIST 총장과 함께 676억원의 부동산 기부 약정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사진제공=KAIST


그는 서울경제 기자를 하던 1971년 농업과 공업이 고루 발전해야 한다는 ‘농공병진(農工竝進)’ 에 공감하던 차에 목장을 하던 언론사 선배로부터 돼지 두 마리를 선물받은 것을 시작으로 축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경기도 안양에 광원목장을 설립해 밤과 주말에 돼지와 소를 키웠고 나중에는 돼지 1,000여마리, 소 15마리 규모까지 키웠다. 이 과정에서 돼지파동과 우유파동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불굴의 굳센 의지와 서울법대 동창들의 도움을 받아 이겨냈다. 1980년 해직 뒤에는 목장 하천에서 모래채취업까지 하다가 이후 부동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게 된다.

1988년 부동산 전문기업인 광원산업을 창업해 여의도백화점(지하4층~지상14층)의 한 층을 매입했고 이후 전체 건물의 3분의1 지분까지 넓힌다. 이 과정에서 건물 관리비라는 이권을 노린 조직폭력배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한 달간 지방으로 피신하기도 했으나 결국 당당히 이겨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장암에 걸리기도 했으나 수술 후 완쾌될 수 있었다.



KAIST에 대한 기부는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독신이던 그는 2000년 미국 건물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매매계약서에 피상속인을 쓰지 않으면 사후 국고로 귀속된다는 것을 알고 고민한다. 이 때 우연히 서남표 당시 KAIST 총장이 TV에서 “국가발전에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2012년 KAIST로의 80억원 유증계약을 시작으로 이듬해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을 맡고 오늘날 ‘이수영 과학교육재단’ 설립추진을 통한 본격적인 과학인재 양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2018년 초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그해 서울법대 동기동창과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었다. 그는 초혼이었고 남편(검사 출신 김창홍 변호사)은 상처한 상태였다. 남편은 ‘이왕 마음 먹었으면 빨리 하라’며 기부를 독려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기증식에서 “KAIST가 우리나라 발전은 물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국내 GDP의 16%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반도체 석·박사 연구인력의 25%가 KAIST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KAIST가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드높이는 데 기부금을 쓰기 바란다”며 “세상만사는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영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이사장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세계 최정상급 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해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KAIST에는 한의학박사 1호인 고(故) 류근철 박사(578억원),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515억원), 김병호 전 서전농업 회장(350억원), 고 김영한씨(340억원) 등이 거액을 기부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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