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안전한 약물 사용을 돕기 위해 ‘약물안전클리닉’을 정식으로 개설해 운영(매주 수요일 오후)에 들어갔다. 지난 4월부터 다른 진료과 및 응급실 약물이상반응 의심환자를 대상으로 클리닉을 시범운영했는데 이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꾸준히 늘어나서다.
약물이상반응은 올바른 약물 사용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하거나 위험한 증상을 말한다. 가볍게는 오심·구토·설사·두통·피로·부종·두근거림·어지러움·두드러기·가려움증에서 심하게는 호흡곤란·혈압저하·의식소실·감각이상·우울감이나 간·콩팥 기능손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약물이상반응으로 고통을 겪거나 목숨을 잃을 뻔했던 환자들의 사례를 약물안전클리닉 강동윤 교수의 도움으로 알아본다.
50대 여성 A씨는 대학생 때 감기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얼굴이 심하게 부어오른 경험이 있어 아파도 약을 먹지 않고 참는 버릇이 생겼다. 정확히 무슨 약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지 몰라 최근까지도 약 처방을 무조건 피해왔다. 하지만 최근 심한 허리통증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는데 얼굴이 붓고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약물안전클리닉을 찾은 A씨는 몇 가지 검사를 거쳐 ‘진통소염제 과민반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클리닉은 나중에 어디서든 약을 처방받을 때 제시하라며 A씨가 피해야 할 약물군을 명시한 ‘약물안전카드’를 발급해줬다. 부작용 걱정이 없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돼 A씨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강 교수는 “아스피린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NSAIDs)는 일반인구의 1% 정도에서 피부(두드러기·혈관부종·발진), 호흡기(비염·천식) 증상이나 쇼크반응(아나필락시스)을 유발할 수 있는데 대부분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과 셀레콕시브(쎄레브렉스)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약 동시 복용 장노년층 ‘이상반응 고위험군’
20대 남성 B씨는 어릴 적 중이염 때문에 약을 먹은 뒤 전신 두드러기와 가려움 때문에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 이후 약을 처방받을 때 문제가 됐던 약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최근 요로감염으로 약을 처방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약들 때문에 전신 두드러기와 가려움이 발생했다. 답답함과 두려움 때문에 약물안전클리닉을 방문한 B씨는 검사를 통해 서로 다른 약이라도 우리 몸에서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차반응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B씨 역시 피해야 할 약물군을 명시한 약물안전카드를 발급받았다.
50대 C씨는 10년 전 건강검진 때 자세한 검사를 위해 처음으로 조영제를 정맥으로 주입하고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그런데 조영제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어지러움이 느껴지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병원이어서 응급조치를 받고 회복됐지만 조영제에 대한 공포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얼마 전 복부초음파에서 신장(콩팥)에 종양이 생긴 것으로 의심돼 조영제를 사용하는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할 상황이 돼 약물안전클리닉을 찾았다. 강 교수 등 의료진은 그에게 피부반응검사, 과민반응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량의 조영제를 정맥에 주입하는 ‘유발검사’를 통해 이상반응 가능성이 낮은 조영제 종류를 추천했다. C씨는 추천받은 조영제로 조영증강CT 검사를 안전하게 마쳤다.
70대 남성 D씨는 고혈압·파킨슨병·혈관염·전립선비대증으로 순환기내과·신경과·류마티스내과·비뇨기과 등 여러 진료과에서 처방한 약을 복용하다 심한 어지러움증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119에 실려간 병원에서 ‘약제에 의한 혈압저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러 병원에서 처방한 약들 중 혈압을 낮추는 성분이 5종이나 포함돼 있어 저혈압이 유발됐던 것. D씨는 권고에 따라 일부 약제를 조정(중단·변경)한 뒤 재발 없이 안전하게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40대 여성 E씨는 최근 감기로 거담제·콧물약·소염진통제 등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복용 2일째 부터 호흡곤란·두근거림 증상이 악화돼 응급실을 찾았다. E씨는 이전에도 다수의 항생제에 두드러기·가려움증이 있었고 3년 전 항생제를 포함한 감기약을 복용하고 두근거림 증상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E씨는 이번 처방에 항생제가 없어 새로운 약물에 이상반응이 발생한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 내과학·예방의학·약학 전문가 다학제 진료 시스템 갖춰
강 교수는 “최근과 3년 전 복용한 감기약에는 혈관을 수축시켜 심계항진(불규칙하거나 빠른 심장 박동으로 어지럽거나 속이 메슥거리거나 흉부 통증을 느낄 수 있음)을 일으킬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이 포함돼 있고 심계항진과 관련된 다른 지병이나 약물 사용이 없었으므로 호흡곤란·두근거림은 슈도에페드린에 의한 약물 부작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씨도 약물 처방 때 슈도에페드린을 제외해 달라는 문구가 명시된 약물안전카드를 발급받았다.
약물안전클리닉은 약물이상반응 전문 진료를 원하는 누구나 동네 병·의원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요양급여의뢰서)를 갖고 방문하거나 서울대병원 홈페이지나 예약센터 전화로 예약할 수 있다. 클리닉은 약물이상반응이 의심되거나 불편을 겪는 환자의 예방·진단·치료·관리를 위해 내과학·예방의학·약학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갖췄다.
클리닉은 광범위한 약물 데이터베이스와 환자별 과거 투약력을 접목해 약물 이상반응에 대해 다면적으로 접근한다. 위험약물을 찾고 약물 이상반응에 대한 치료 대책도 수립한다. 향후 약물 조절과 대체약에 관한 협진, 유전자 검사를 이용한 중증 약물이상반응 위험 예측 등에도 나설 계획이다.
강 교수는 “약물이상반응은 치료를 방해하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신속한 진단과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약물안전클리닉을 통해 환자의 불편과 위험을 최소화하고 최적의 치료를 도울 것”이라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의약품 부작용 보고는 26만2,983건으로 2018년보다 2.2% 증가했다. 의약품 부작용은 되돌릴 수 없는 장애를 남기거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서는 부작용 예방과 안전 사용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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