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종전선언’ 필요성 강조했지만
북핵문제 해결책은 한마디도 안해
오히려 北은 ‘종전’에 큰 관심 없어
핵무기 존재하는 한 가짜평화일 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6·25 70주년 연설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통해 남북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이라며 “이 오래된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소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연설문 그 어디에도 북핵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언급이 없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이 종전선언이 처음에는 북한의 구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한국의 것으로 의심이 들었다면서 이것 때문에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북한의 위협이 없는 듯 보이는 평화회담으로 만들어 대북제재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온전히 놔둔 채 과연 한반도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종전선언의 기원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조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남북 정상과 함께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양자회담 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를 폐기하면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종합해보면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이를 검증하는 조건으로 정전상태에 있는 한국전쟁을 최종적으로 끝내는 평화협정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구상이 앞뒤 거두절미하고 ‘종전선언’으로 명명돼 그해 10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3자 혹은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고 10여년이 지난 2018년 판문점선언에 다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는 조항으로 포함됐다. 원래 있던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 조건과의 연관성은 희미해졌거나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2016년 중국은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평화체제 협상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쌍궤병행론’을 제안하면서 우리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이 제안을 단박에 걷어차버렸다. 볼턴의 저서에 의하면 미국은 북한에 종전선언을 거저 주기 싫어 대가로 북한의 모든 핵무기·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를 요구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저도 다 안 돼 2018년 싱가포르 합의에서 종전선언이 날아갔는데도 북한이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2019년 하노이회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인도적 지원 등 온갖 선물을 다 제시했는데 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제재 해제뿐이었다. 한마디로 북한에 종전선언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7월27일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기술적으로는 교전 상태가 지속되는 정전이 67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간의 적대관계를 하루속히 극복하고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의 염원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간절히 기원한다고만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평화가 왔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우리와 전 세계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심지어 계속 늘려나가는 한 어떤 미사여구의 종전선언도, 완벽해 보이는 평화협정도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핵을 가진 북한과의 평화는 굴종적이고 종속적인 가짜 평화에 불과하다. 비핵화 없는 평화는 그저 착시현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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