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 체제 경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며, 함께 잘 살고자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의 기념사는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 듯이 그 길은 참 멀고 험하다. 30년 전 멈춰선 냉전의 시간이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한반도의 현실과 운명은 영화마저도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자문하게 한다. 오는 29일 개봉을 앞둔 ‘강철비 2 : 정상회담’가 바로 그런 영화다.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냐고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을 27일 인터뷰했다. 이날은 67년 전 한국전쟁 정전 협정을 체결했던 날이다. 분단 고착화의 시작이며, 영화 속 대통령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의 처지’를 개탄하게 만든 그 날이다.
정우성은 앞서 지난 23일 열린 언론 시사회 당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 민족은 충분히 불행했는데 언제까지 이런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서 해방 후 다시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을 치르는 등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며 “이후 경제 발전은 이룩했지만, 물질 만능주의 속에 역사는 상실한 채 계속 물질만 쫓아가고, 그로 인해 여러 사회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는 현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강철비2’는 정우성이 언급한 우리 민족의 현재진행형 숙제를 직시하면서 영화적 상상력을 한껏 더한 작품이다. 영화는 북핵 협상 마무리와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 논의를 위해 북한 원산에서 만난 남북미 정상이 북한 내부 쿠데타로 핵 잠수함에 함께 갇힌 후 벌어지는 가상의 상황을 다룬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조선사 역할은 유연석, 미국 대통령 역할은 앵거스 맥페이든, 쿠데타를 주도하는 북한 호위총국장은 곽도원이 각각 맡았다.
박진감 넘치는 잠수함 액션 장면 등이 스릴감을 선사하고 등장인물 간 유머러스한 대화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단순한 오락 영화로 즐기기는 힘들다. 이에 대해 정우성은 “대한민국이든, 이북이든 한민족 만이 가진 아픔에 대한 DNA가 분명히 있다”고 단언하며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이런 마음은 뭘까’하는 진지한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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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에게 대통령 역을 처음 제의 받았을 때 심정도 밝혔다. 그는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정치적 발언을 하는 배우라고 규정짓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어서 영화에 정우성이 들어가면 불리해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되물었다”고 돌아보며 “이에 감독님은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표정이 영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그가 대통령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동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대통령 캐릭터의 이미지는 ‘인내’였다. 그는 “대의를 위해 공심(公心)을 끊임없이 지켜야 하는 자리”라며 “답답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직위를 가진 사람들은 공심을 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성은 “분단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대처해야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참 외롭고 엄청나게 고독한 자리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특히 한반도 분단과 관련해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답답함과 고뇌를 표현하려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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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현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없는지 묻자 정우성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맞지 않을 뿐더러 힘들 것 같다”며 “하지만 정치는 국민이 이끌어야 한다는 개인 신념이 있다. 국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가치와 생각들을 이야기 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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