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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61> 美가 “習은 총서기일 뿐” 공격하지만 中서는 ‘총서기’가 일반적…‘당 주석’ 부활 시도도

■중국 ‘총서기’와 ‘주석’의 차이는

지난해 6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장병이 홍콩의 한 해군기지에서 시진핑의 모습이 그려진 홍보판 앞에 서있다. 시진핑의 일반적인 호칭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지만 군에서는 ‘시 주석’으로 부른다. 그는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위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최근 시진핑(習近平·습근평)에 대한 호칭을 기존 ‘프레지던트(President)’에서 ‘제너럴 세크리터리(General Secretary)’로 고쳐 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미중 갈등의 심화에 따른 미국의 공세로 인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프레지던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를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 같은 독재체제에서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영어로 ‘프레지던트’는 한국에서는 대통령으로 번역되지만 중국에서의 공식 직위는 ‘주석(主席)’이다. 대신 ‘제너럴 세크리터리’는 중국에서 ‘총서기(總書記)’에 해당된다. 즉 미국인의 생각으로는 시진핑이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이 아니라 일개 정당인 중국공산당의 수장인 ‘총서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산당 독재라는 측면에 방점을 두는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3일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의 닉슨도서관에서 ‘중국 공산당과 자유 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하면서 “시진핑 총서기는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신봉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면 정작 중국은 어떻게 부를까.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 영문 매체를 보면 시진핑에 대해 ‘프레지던트’이거나 ‘제너럴 세크리터리’라고 부르는 사례가 혼재돼 있다. 물론 이들이 마구잡이로 번갈아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준은 물론 있다.

중국 포털 바이두를 보면 시진핑이 가진 공식 직위는 4개다. 바로 중국 공산당(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국가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이다. 맨 앞에 표시됐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중국은 공산당이 ‘중국’이라는 국가를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다. 때문에 당의 직위가 국가 직위보다 앞선다. 중공 중앙위 총서기이자 중공 중앙군사위 주석 자격인 시진핑은 최고 지도자로서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중국중앙(CC)TV의 뉴스를 보면 앵커는 시진핑의 호칭에 대해 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3개만 부른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사실상 같은 조직이기 때문에 편리상 더 중요한 중공 관련 호칭만 부르는 듯하다.

방송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는 영문이나 중문을 포함해 모든 중국 매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뉴스에서 일반적인 중국 국내 일을 기사화할 때 시진핑은 총서기다. “시 총서기가 지린성을 방문했다”는 식으로 나온다. 때문에 호칭 빈도는 총서기가 대부분이다.

반면 ‘시 주석’이라고 호칭할 때는 주로 대외문제를 이야기할 때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국가주석)’은 외교용인 것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군인들의 시진핑에 대한 호칭인데 이들도 ‘시 주석’이라고 부른다. 시진핑은 인민해방군이라는 공산당 당군을 지휘하는 ‘중공 중앙군사위 주석’ 지위를 갖고 있다.

때문에 최근 미국 인사들이 시진핑을 ‘총서기’로 부르는 것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매체나 일반인들이 시비를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인들의 호칭 변화는 미국 국내용인 셈이다.

그러면 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주석과 총서기는 어떤 차이일까. 일단 주석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직위 중에 하나다. 우리 식으로 하면 위원장, 이사장, 회장 등에 중국은 주석이라는 말을 쓴다. 국가주석이나 중앙군사위 주석은 물론 통일전선조직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수장도 주석이다. 민간단체에서도 주석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축구협회의 수장은 주석이다.

문제는 총서기라는 호칭이다. 중국에서 총서기로 불리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바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다. 물론 이는 ‘현재’의 사례일 뿐이다. 중공 중앙위는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으로 구성되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중앙위원회의 수장이 총서기이니 결국 중국에서 최고지도라는 말이 된다.

마오쩌둥(왼쪽)이 지난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중난하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마오는 이때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닉슨을 만났다. /신화연합뉴스


역사상 총서기 위에 더 높은 직책으로 ‘주석’이 있었다. 과거에 존재했던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당 주석)은 국가주석이나 중앙군사위 주석과 ‘호칭’ 자체는 같지만 그 권한과 책임은 훨씬 컸다. 시진핑은 지난 2017년 당헌 개정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총서기에서 당 주석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시진핑의 1인 권력이 아직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의 아버지’는 마오쩌둥이다. 마오쩌둥은 지금도 ‘마오 주시(毛 主席·모 주석)’로 불린다. 여기서 마오 주석이라고 할 때의 주석은 국가주석이 아니라 당 주석을 의미한다. 그는 국가주석 자리는 부하들에게 내줬지만 죽을 때까지 공산당 수장인 당 주석 자리는 지켰다.

중국 공산당 안에서 주석과 총서기의 역할과 책임은 다르다. 당 총서기는 말 그대로 서기 중의 한 명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총서기를 영국 총리와 많이 비교를 한다. 영국 총리는 ‘동급자 중의 1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즉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는 의원들과 지위가 같지만 각부 장관을 통괄한다는 의미에서 총리라는 것이다.

반면 당 주석은 권한 면에서 대통령제의 대통령과 가깝다. 각부 장관보다 높은 위치에서 최고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사례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현재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회 멤버는 총서기를 포함해서 7명인데 이들은 모두 형식상 동급의 상무위원이다. 때문에 중요한 사항은 투표로 결정한다. 총서기가 찬성하더라도 상무위원 4명 이상이 반대를 하면 다수결로 결정이 채택되지 않는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은 별로 없겠지만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주석은 다르다. 주석은 상무위원들의 찬성이나 반대와 상관없이 최종결정권을 가진다. 주석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그러면 왜 현재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최고 수장이 주석이 아닌 총서기일까. 이는 중국의 어두운 역사와 관련이 있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전국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을 때는 당연 중공 중앙위원회 수장은 ‘주석’이었고 마오쩌둥이 그 자치를 차지했었다. 마오는 당시에도 당 주석과 함께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세자리를 모두 갖고 있었다. 마오는 나중에 부하에게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줬다. 중국에서 국가주석은 사실상 명예직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당 주석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마오의 독재는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문화대혁명을 발동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졌다.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한 후 화궈펑이 마오의 자리를 차지했다. 화가 당 주석이 된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을 만든 것은 이른바 ‘개혁개방’의 총지휘자 덩샤오핑이다. 마오의 부하였던 화궈펑을 최고 지도자 자리에서 몰아낸 덩은 1982년에는 ‘당 주석’ 자리 자체를 아예 없앤다. 대신에 ‘총서기’를 만들었다. 당 주석이 누구의 견제 없이 전횡을 할 수 있는 반면 총서기는 다른 상무위원들과의 협의가 필요했다. 덩의 목적은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식 집단영도체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인독재를 막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이후 40여년 동안 결정적인 내분 없이 공산당 지배가 유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물론 ‘총서기’라는 제도가 이때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에도 총서기는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후 당 주석으로서 마오쩌둥의 업무량이 폭증했다. 업무량 증가는 곧 권한 집중으로 이어진다는 이유로 1956년 공산당 안에 중앙서기처를 만들었다. 이 서기처 수장인 ‘총서기’가 마오의 일상업무를 나눠 맡도록 했다. 당시 첫 총서기는 덩샤오핑이었다. 이런 구조에 따르면 총서기는 ‘사무총장(제너럴 세크리터리)’ 정도가 맞는 셈이다.

문혁 이후에 개인독재로 흐를 수 있는 당 주석을 없애고 그전에 잠시 있었던 총서기 제도를 다시 끄집어 낸 것이다. 1982년 재현된 첫 총서기는 후야오방이었다. 문제는 남았다. 중국 공산당원들이나 일반인들 뇌리에는 당 주석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사라지고 총서기라는 다소 애매한 자리가 생긴 셈이다. 총서기가 주는 가벼움을 덩샤오핑도 알았다. 본인이 총서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핵심’이라는 칭호다.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총서기의 불안정한 상황을 지지해주는 받침대 역할이다.

총서기를 다른 정치국원이나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차이 나게 만들기 위해 ‘핵심’ 칭호를 사용해 구별했던 것이다. 핵심이 된 총서기의 권한은 이제 기존 총서기와 당 주석의 중간쯤에 있게 됐다. 처음 핵심 칭호를 받는 사람은 1989년 총서기가 된 장쩌민이다.

물론 총서기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핵심 칭호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장쩌민에 이은 후진타오 전 총서기는 핵심 칭호를 거부했다. 집단영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급자 중의 1인자’가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시진핑은 2016년 핵심 칭호를 받았고 지금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시진핑의 권력이 후진타오보다 센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물론 시진핑은 이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보다 확실한 권력을 위해서는 당 주석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아직 이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앞서 장쩌민도 지난 1997년 당헌을 개정해 당 주석이 되고자 했지만 주위의 호응을 얻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덩샤오핑이 남겨준 제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덩샤오핑(오른쪽)이 장쩌민과 함께 1989년 11월 열린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 회의를 계기로 덩은 중앙군사위 주석 지위를 장에게 넘겨줬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은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중국공산당신문 캡처


참고로 문혁 이후 덩샤오핑의 직위는 무엇이었을까. 덩은 1987년 공산당과 국가의 대부분 직위에서 물러났지만 단 하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위만은 1989년 11월까지 갖고 있었다. 1989년 6월 톈안먼 시위 진압은 중앙군사위 주석 자격으로 덩샤오핑이 결정했다. 물론 덩은 중앙군사위 주석 사퇴 이후에도 심복들을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요직에 두고 군권을 유지했다. 당시 공산당 총서기이자 중앙군사위 주석은 장쩌민이었지만 중국 내외에서 모두가 덩이 최고 권력자라고 인정했다.

앞서 마오쩌둥도 죽을 때까지 당 주석과 함께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했다. 이를 보면 사실상 중국의 지배자는 ‘군권’을 가진 중공 중앙군사위 주석인 셈이다. 현재는 공산당 중앙위 총서기가 중앙군사위 주석을 자동으로 겸직하고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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