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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富의 축적 위한 수단인가

[책꽂이] 가치의 모든 것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민음사 펴냄

'가치=가격' 변질된 개념 때문에

재무지표·단발성 주가부양 급급

富 축적 돕는 '가치 착취' 정당화

공공영역 적극적 시장 참여 등

'가치' 개념 재정립 필요성 강조





가치는 ‘창조된다’는 게 현대 경제 체제의 주된 사고였다. 가치 창조는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가치라고 일컫는 것은 ‘부(富)’, 수치로만 표현되고 통용되는 오늘날의 가치에 ‘창조’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더 높은 수치를 위해 불법과 기만이 개입되는 ‘가치의 창조’는 사실 ‘가치의 착취’가 아닐까.

신간 ‘가치의 모든 것’은 오랜 시간 경제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해온 가치에 대해 이 같은 의문을 던지면서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에 맞는 개념의 재정립을 주장한다.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균열이 발생한 지금, 경제학의 기본 개념부터 다시 짚어보자는 것이다.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저자가 내놓은 것은 바로 ‘가치 착취’라는 개념이다. 가치 착취는 자원을 이전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의 경제가 상정하는 가치 개념은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쓴, 부를 빼앗기 쉽게 만들어진 가치 착취’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기업은 고객·주주 가치 극대화를 외치지만, 실상은 재무상의 성과와 단발성 주가 부양에 그칠 뿐이다. 책은 그 대표적인 예로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꼽는다. 단기적으로 주당 순이익을 높이고 경영자와 주주에게 가는 몫을 키우지만, 그 이면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막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 외에도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명목하에 경영자들은 이윤을 내기 위해 생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하청에 하청을 주며 맹렬한 세계화에 나섰다. 사모펀드를 비롯한 인수 합병 기관들은 가치에 굶주린 새로운 투자자들이 전 세계 주식시장을 공격하도록 이끄는 기수가 됐다. 가치라는 개념의 변질과 몰이해는 때로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혁신 기업들에 대한 냉철한 진단도 인상적이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고를 기반으로 기업의 혁신은 그동안 자본주의의 새 동력으로 추앙받았다. 이들 기업이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는 경제의 활력과 인류 삶의 편의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막대한 이윤과 시장 점유율은 그들이 창조한 가치에 비해 과도하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등의 기술과 신약의 탄생에는 공공기관의 지원이 들어가지만, 독점적인 수익은 기업의 몫이다. ‘리스크는 사회화되고 보상은 사유화되는’ 혁신의 모순이다.

책은 ‘소수의 부의 축적’에서 ‘공생의 자본주의’로 가치의 개념을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불평등 해소, 녹색 경제로의 전환 등 오늘날의 경제가 처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 ‘부가 과연 어디서 창출되는지’를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공공 영역의 역할을 강조한다. 공공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투자, 개입은 통상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 테슬라의 전기차 개발에는 거액의 공공 자금이 투입됐다. 공공 영역은 의료·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서도 공공 영역이 단순히 부의 재분배를 넘어 부의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와 공공 기관이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소극적으로 시장을 보조하는 행위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시장을 구성하는 행위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공 자금으로 개발한 약품 가격에 상한을 두거나 공공 자금으로 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할 때 이윤을 투기적인 자사주 매입에 쓰지 말고 생산에 재투자하도록 조건을 다는 식이다. 이런 공공의 참여야말로 “공적 자금을 지원한 혁신의 이득을 승자가 독식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역기능과 그에 대한 처방전은 이미 수많은 책에서 제시돼 왔다. 그 논의에서 ‘고정값’으로 설정돼 있던 가치의 개념을 다시 경제학 이론의 출발점으로 가져와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이 책은 차별화된다.

책의 서문은 1930년대 미국 광산업계의 노조 운동을 주도했던 빅 빌 헤이우드의 발언을 소개한다. ‘야만적인 금광업계 거물들은 금을 탐사하지도 않았고 금을 캐지도 않았고 금을 가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희한한 연금술인지 금은 전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2020년에도 유효한 질문은 왜 지금 ‘가치’에 대한 개념 재정립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2만 3,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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