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여준 지난 2008년 6월27일 ‘영변 냉각탑 폭파’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전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당시 북한은 핵 개발로 인한 경제파탄을 만회하기 위해 일부 핵시설 폐기를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에도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며 비밀리에 핵 능력을 발전시켰고 2017년 급기야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하며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5월24일 2008년을 연상케 하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며 비핵화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만 폐기하겠다고 고집하며 미국 측에 상응조치를 요구했다. 이는 일부 시설 폐기를 협상용으로 제시하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전략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 개발의 핵심인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관련 시설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 파기 역사를 볼 때 북한 핵시설 전체의 사찰 및 폐기 없이 적대시정책 철회 등 상응조치를 취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이 미국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적대정책 철회는 결국 미군의 전략자산 철수 등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제거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이후 정세 변화에 따라 다시 핵무장에 나설 경우 한국은 핵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북한과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핵무장은 국익에 맞지 않기 때문에 최후의 보루로 남겨둬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핵무장은 우리가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북한에 핵 보유 개발의 정당성만 부여해준다”며 “중국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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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의 유일한 해법은 미국과 대북제재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것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라는 분석에서다.
실제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취해진 대북제재는 김 위원장의 목을 조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북한경제리뷰 5월호에서 ‘올해 북한이 처한 경제 충격 양상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던 1994년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북한의 경제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저런 식으로 1~2년 더 가면 북한이 버티지 못하고 다시 협상장으로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우인·김정욱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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