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단체가 맞불집회를 하거나 집회신고장소를 벗어날 경우 때로는 물리력이 충돌하기도 한다. 때문에 전국 1,400여명의 대화경찰관들은 이러한 충돌을 막기 위해 이해당사자들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으로 갈등을 조정해나간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집회현장을 누비며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대화경찰관을 ‘윤활유’에 빗대는 이유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만난 양정열 서울 종로경찰서 경위는 10년 가까이 정보관으로 일하며 시위·집회현장을 관리해오다 지난 2018년 말 대화경찰제도가 생겨난 뒤로는 ‘대화경찰’이 적힌 조끼를 입고 집회현장을 누비고 있다. 양 경위를 비롯한 대화경찰은 집회 전부터 주최 측과 꾸준히 접촉하며 상호 간의 신뢰를 쌓는다. 이를 토대로 집회현장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의사소통 창구가 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갈등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양 경위는 “시위대와 시대위 사이 또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생기면 양쪽을 오가며 오해와 갈등을 푸는 역할을 한다”며 “갈등이 생기면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서로 소통을 많이 하다보면 마찰의 빈도가 많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대화경찰제는 스웨덴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2018년 10월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제도다. 대화경찰 도입 이전만 해도 집회현장에서 일선 경찰서의 정보관들은 시위·집회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사복을 입고 활동하는 탓에 집회현장에서는 경찰이 시민을 사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다. 이에 공개적으로 집회 참가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대화경찰제가 도입됐다. 현재 서울 400여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1,400명 가량의 대화경찰이 활동 중이다.
집회 참가자들과의 소통 강화와 사전 갈등 조율을 목적으로 도입된 대화경찰제는 우리 사회에 평화시위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 경위는 “대화경찰의 가장 큰 장점은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항상 집회신고장소 근처에서 대화경찰 조끼를 입은 채로 상주하면서 시위대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경위는 “경찰이 단순히 집회를 막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시위대와 대화를 나누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경찰제를 통해 집회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사전 차단하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하지만 언제 생길지 모르는 돌발상황 때문에 대화경찰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얼마 전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자리 선점 다툼과 시위대 간 갈등이 고조된 것처럼 갈수록 사회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충돌과 마찰이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 탓이다. 양 경위는 “주최 측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시위 참가자들의 돌발행동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갑자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것도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대화경찰이 서울시와 집회 주최 측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광화문광장은 수많은 목소리가 모이는 곳”이라며 “시민들도 본인들과 주장을 달리한다고 배척하고 충돌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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