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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의 美 등급전망 조정 월가가 별 것 아니라는 이유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모두가 부채 원하는 상황"

지금으로선 더 두고 봐야

미 경제방송 CNBC가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전망 하향 소식을 전하고 있다. /CNBC 방송화면 캡처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미국의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를 이유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의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었습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는 실제 파장이 어떨지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데요. 미국 관련 소식은 우리 경제와 증시에도 큰 영향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좀 지났더라도 분위기를 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월가와 미국 언론에서는 한 마디로 “별 것 아니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달러화 약세와 맞물려 잘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당장 피치의 등급 전망 조정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역대 최저수준 미 국채금리...투자자들은 괘념치 않는다
이는 10년 물 미국 국채 금리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 0.535%로 사상 최저 수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미국 국채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부채 상환 능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사실상 없다는 의미”라고 정의했습니다. 미 경제방송 CNBC는 “누구나 부채를 원한다. 이번 전망 조정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실제 이번 것은 신용등급 전망 하향입니다. 전망을 내리면 앞으로 등급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등급 전망과 등급은 그 수준과 상황이 다릅니다. 피치 역시 이번에 미국의 신용등급은 ‘AAA’를 유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월가에서는 이번은 등급 전망으로 실제 미국의 신용등급이 내려간 것도 2011년에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특별나게 새로운 건 아니라는 것이죠. 지금보다 더 한 신용등급 강등의 추억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의해 이뤄졌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줬었지만 9년 여가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셧다운(폐쇄)에 지금은 미국 경제가 고전하지만 직전까지만 해도 연 3%에 가까운 성장을 했죠.

추가로 달러화가 2011년 신용등급 조정 이후 무너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달러 약세가 우려되지만 여전히 위기 때면 너도나도 달러화를 확보하려고 안달입니다. 한국은행이 이번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연장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사전에 해소했다고 평가했는데요. 달러 가치가 없다면 왜 연장했을까요. 시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켓워치도 이번 피치 관련 소식을 짤막하게 전달했습니다.

스스로도 혼란한 피치...무디스, S&P가 더 중요
이제 피치의 보도자료를 좀 더 자세히 뜯어보겠습니다. 등급 전망 하향을 다루는 피치의 자료를 보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쉽게 말해 미국은 부채가 늘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부채가 많고 이건 리스크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서는 정확하지 않거나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부채 관련 장점

① 달러화 발행 가능 상당한 이점

② 부채에 대한 내성 다른 나라(AAA 기준)보다 높아

③ 경제규모와 1인당 고소득, 역동적인 기업환경 등 유리

④ 대규모 정책대응에 2020년 다른 나라보다 경제 덜 침체

⑤ 실질 마이너스 금리가 부채 부담 덜어

미국의 부채 관련 위험

① 2021년 일반 정부 부채 130% 돌파

② 2020회계연도(2019. 10~2020. 9) 재정적자 3.7조달러 추정



③ 보건 및 사회보장 비용 중장기 상승추세

④ 임금 등 인플레이션 기대 높아져

⑤ 대선 앞두고 정치적 갈등 심화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내렸지만 미 국채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AP연합뉴스


우선 피치는 ①②③번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기적인 채무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불식시키지는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시장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0년 만기면 중기 이상인데 금리가 되레 사상 최저치로 갑니다. 채무 불이행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이 부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냥 달러 부채이기 때문이죠.

피치가 부채 문제를 짚는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인플레이션입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식료품 같은 일부 품목에서 물가상승이 있었고 향후 노동계의 임금인상 요구가 더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인데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이자비용과 함께 부채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죠.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발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금은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밝혔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도 “동의한다”고 했었죠.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QE)와 제로금리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인플레는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아니더라도 계속 낮아지는 추세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일본이 대표적인데요. 일본의 부채비율은 238%에 달합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부채위기나 인플레 걱정은 없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기축통화국은 부채 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합니다.

전반적인 피치 보도자료를 보면 “미국은 부채위기를 겪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위험성은 있다”는 정도입니다.

피치는 글로벌 신평사지만 무디스, S&P에 비해서는 작다. /피치 트위터


하나 더 참고할 것은 피치는 영국계 신용평가사로 무디스, S&P와 함께 3대 신평사로 꼽히지만 사실 앞의 두 회사와 차이가 큽니다. 2012년에 하나은행이 피치에 부여한 외화채권신용등급에 불만을 갖고 등급철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들은 것이 “무디스와 S&P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거였습니다. 지금은 다를까요? 최근 KB국민카드가 피치의 신용등급 평가를 안 받겠다고 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지난 3월에는 롯데쇼핑이 피치에 등급 철회를 요청했죠. 여기에서 중요한 건 피치의 스탠스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만 결국 무디스와 S&P가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피치 쪽에서 듣기에는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무디스와 S&P가 움직일 때까지 말이죠.

달러화 약세 따져볼 것들
그럼에도 부채가 계속 늘어나고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입니다. 앞서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미국 정부와 연준의 정책에 통화가치가 하락한다는 공포를 유발하고 있으며 누적 부채도 너무 크다며 달러가 이러다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도 잘 따져봐야 할 부분입니다. 위안화가 달러화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월가나 학계 전문가는 없습니다. 홍콩 사태에서 봤듯 중국에 대한 신뢰가 상당 부분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중국을 통화나 결제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었습니다. 국제결제시스템인 스위프트에 따르면 달러화는 국제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33% 정도입니다. 중국 위안화는 1.76%입니다. 달러화가 앞으로 35%가량 평가절하할 수 있다고 한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도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결국 유로화 정도인데 지금까지 2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달러화의 지위를 뺏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달러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할 수 있고 각국이 차지하는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따져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이나, 한 단계 더 나아가 신용등급이 떨어진다고 해도 미국 경제가 갑자기 무너지거나 천지개벽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사용비중이 갈수록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단기간 내 상황이 뒤바뀌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물론 미국의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시장에 충격이 있을 겁니다. 이 부분은 부인할 수 없죠.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피치의 전망 조정만으로는 크게 반응할 게 아니며 상황을 더 두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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