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 외교관이 뉴질랜드에서 남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국제 갈등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자 외교부가 뒤늦게 해당 인원을 귀국 조치시켰다. 부처 차원에서 충분히 대응을 할 수 있었음에도 국가 원수 차원의 항의가 있은 뒤에야 조치에 나섰다는 점에서 외교부의 이번 행보는 대표적 ‘외교 망신’ 사례로 남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만 외교부는 주한뉴질랜드대사관을 통해 성추행 관련 의혹을 공식적인 경로로 제기하지 않고 정상 통화에서 불쑥 꺼낸 점은 문제라는 입장도 전달하기로 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교관 A씨에 대해 오늘 즉각 귀임 발령을 냈다”며 “여러 물의를 야기한 데 대한 인사 조치 차원으로 최단시간 내에 귀국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필립 터너 주한뉴질랜드대사를 면담할 것”이라며 “뉴질랜드 측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올바른 해결 방식은 한국과 뉴질랜드 간에 공식적인 사법 협력 절차에 의한 것임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뉴질랜드 측이 우리 정부에 공식적인 사법 절차 협력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우리 외교부가 뉴질랜드 측에 언론을 통해 계속 문제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전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상 통화에서 갑자기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것은 외교 관례상 매우 이례적이라며 우리 정부의 불편한 입장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A씨 개인에 대한 특권 면책 특권과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한국 대사관 공관원에 대한 특권 면제 두 가지는 서로 구분돼야 한다”며 “우리 외교부는 A씨 개인에 대한 특권을 주장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께 뉴질랜드 대사관과 대사관 직원에 대한 특권 면제를 포기하지 않는 형태로 자발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뉴질랜드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A씨는 2017년말 주뉴질랜드 대사관에 근무할 당시 대사관에서 일하는 뉴질랜드 국적의 남자 직원을 3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뉴질랜드 경찰 조사를 받기 전인 2018년 귀국해 외교부 자체 조사만 받고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A씨는 현재까지 필리핀에서 근무 중이다.
뉴질랜드 법원은 지난 2월 A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해 한국 외교부에 협조 요청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외교관의 특권 및 면제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알리지 않고 있다가 지난 4월 뉴질랜드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후 국내외 언론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보도하고 정부의 대응 태도를 지속적으로 지적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8일 한·뉴질랜드 정상 통화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성추행 문제를 거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1일(현지 시간) 자국 매체 뉴스허브 방송에 출연해 A 씨에게 “결백하다면 자진해서 뉴질랜드로 와 조사를 받으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