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와 A씨가 같이 일한 건 같은 해 8월말 경부터다. A씨는 B씨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일하는 동안 ‘XX, 네가 기술자냐,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네가 왜 이 일을 하느냐’는 폭언은 예사였다. 종종 B씨로부터 손찌검을 당하기도 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 두 사람은 인력사무소 사장의 지시에 따라 주차장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A씨가 B씨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B씨로서는 특별한 이유 없는 괴롭힘이었고, 격분한 그는 작업장에서 쓰려고 준비한 시너를 꺼내왔다.
A씨는 트럭을 타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돌아온 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댄 채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는 A씨를 본 B씨가 그에게 종이컵에 담긴 시너를 끼얹었다. 그의 몸뿐 아니라 차량에도 시너가 묻었고, 차에서 빠져나오려 하자 B씨는 라이터로 차량에 불을 붙였다. 트럭이 불타기 시작하고, 불길은 A씨의 몸에도 붙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끝은 이토록 참혹했다.
검찰은 그를 살인미수혐의로 기소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살인죄가 인정됐다. 1심이 B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데 이어 2심도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성수제·양진수·배정현 부장판사)는 B씨에 대해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용인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며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B씨가 범행을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고 일갈했다.
다만 재판부는 B씨가 수차례 괴롭힘으로 불만이 누적된 상태에서 폭행을 당하자 격분해 우발적으로 저질렀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집행유예 이상의 전과는 없는 점 등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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