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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걸 해냈다, 뮤지컬 ‘마리 퀴리’

女 최초 노벨상 마리 퀴리 인생 조명 팩션

업계서 꺼리는 '여자 주인공+창작 뮤지컬'

주인공 물론 조력자도 여성 캐릭터 전면에

男 서사·라이선스 중심 공연 시장에 새바람

작품성에 매료, 티켓파워 옥주현 출연 자처

2월 300석 초연→4개월만 700석 덩치 재연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마리 역을 맡은 옥주현(왼쪽)과 안느 역의 이봄소리./사진제공=라이브




뮤지컬 제작자들이 쉽게 시도 못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뮤지컬 주 소비층이 20·30대 여성이라는 특성상 남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두 명 이상 캐스팅하는 쪽이 수익 면에서 ‘안전하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두 번째는 창작 작품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해외에서 이름 날린 라이선스 공연이나 이미 검증을 거친 재연작과 비교할 때 흥행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 ‘기피 공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여자가 주인공인 창작뮤지컬’은 그야말로 모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어려운 조합으로 관객은 물론이고, 대형 무대 배우까지 불러들인 작품이 있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의 치열한 삶을 그린 팩션 뮤지컬 ‘마리 퀴리’다.

이야기의 큰 틀은 과학자 마리의 고뇌와 성장이다. 마리(김소향·옥주현)는 약소국 폴란드 출신의 이민여성이라는 편견과 싸워가며 방사능 물질 라듐을 발견하고, 끝내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인물이다. 주체적인 여성의 삶이라는 스토리는 사실 제목만 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 작품이 빛나는 것은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로 역시나 여성 캐릭터인 안느 코발스키(김히어라·이봄소리)를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파리행 기차에서 마리와 만나 친구가 된 안느는 라듐 시계 공장에 들어가지만,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한 뒤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이다. 물론 극 중 마리의 남편 피에르가 등장하지만, 피에르는 마리의 연구를 지지하는 ‘동지’의 색깔이 강하다. 마리에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고뇌(라듐의 위해성)와 성장(위해성의 공표와 지속적인 연구)을 가능케 하는 인물은 안느다.

이는 남자 캐릭터 위주의 작품 서사와는 전혀 다른 설정이다. 기존의 작품들은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도 조력자가 남성(왕자나 남성 귀족)인 경우가 많았다. 마리 퀴리의 김태형 연출은 최근 열린 프레스콜에서 “지금까지 주인공이 여성인 경우는 많았지만, 그의 조력자나 친구나 라이벌은 늘 남성이었다”며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안느에게 모든 역할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별을 떠나 배우의 역량으로 어떤 메시지든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주인공인 (왼쪽부터) 마리 역의 옥주현, 김소향, 안느 역의 김히어라, 이봄소리/사진=라이브




좋은 작품은 ‘스타 배우’도 대학로로 불러들였다. 지난 2월 초연한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5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재연 무대를 올렸는데, 이번 공연에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배우 옥주현의 출연이다. 옥주현은 2005년 ‘아이다’로 데뷔한 이래 줄곧 대형 뮤지컬 주연으로 대극장에 서 왔다. 그는 마리 퀴리 초연 공연을 본 뒤 작품에 매료돼 적극적으로 재연 출연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탄한 작품성에 든든한 배우들까지 더해져 공연의 덩치도 커졌다. 마리 퀴리는 공연 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하는 창작뮤지컬 공모전 2017에 선정된 작품이다. 약 1년의 인큐베이팅을 거쳐 지난해 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 레퍼토리 발굴 사업인 창작 산실로 관객과 만났고, 올 2월 성공리에 첫 상업 무대에 올랐다. 300석 규모의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에서 데뷔한 마리 퀴리는 5개월 만에 규모를 배(700석)로 키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 재연을 올렸다. 창작 뮤지컬 성장의 이상적인, 그러나 쉽지 않은 좋은 예를 만든 것이다.

극중 마리는 고뇌를 담아 노래한다. “선례(先例)도 기준도 없다.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 안전한 공식을 버리고 스스로 새 길을 만든, 주인공 같은 작품이다.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 없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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