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이 맞지 않으면 사퇴하세요!”
언뜻 청와대 소속 인사가 행정부처 공무원을 질책하는 발언 같지만 전혀 아니다. 지난 7월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기관을 감찰하는 것이 주 업무인 최재형 감사원장을 몰아붙이며 한 말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이 탈원전 정책에 불리한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의혹이 일자 이날 여당 의원들은 ‘탄핵’까지 거론하며 최 원장을 대놓고 질타했다. 청와대는 같은 날 김오수 전 차관 추천 거부 논란을 두고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낙연 의원도 “최 원장은 직분에 충실하라”고 거들었다.
헌법 제97조는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정한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행정 각부에 관한 조항과는 분리돼 있다. 또 감사원법 제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5조는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헌법과 법률 그 어디에도 감사원장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최 원장은 어떤 면에서 반헌법적·초법적 압박을 받는 셈이다. 정부 여당의 주장대로라면 사실 감사원이라는 조직 자체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청와대와 여당은 2017년 12월 최 원장 인사청문회 당시만 해도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나갈 적임자” “미담제조기” “병역 명문가 출신” 등의 찬사를 쏟았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철학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스스로 임명한 인사를 ‘적폐’로 낙인 찍은 사례는 최 원장 외에도 더 있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윤석열 검찰총장 등 청와대와 정부기관 수장들 간 갈등은 정권 내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도 피곤하다. 이쯤 되면 차라리 최 원장 등을 임명할 당시 인사를 추천한 사람, 검증한 사람들을 추려내 그 무능에 책임부터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정운영에 방해되는 인사를 잇따라 올려보냈다는데 청와대 출신 중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국민들도 인사 갈등의 근원이 뭔지 알 권리가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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