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노총’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노사정 대화에 나섰으나 내부 강경파에 밀려 직(職)을 내려놓은 김 전 위원장은 현재의 민주노총 상황을 ‘투쟁의 큰 바퀴와 교섭의 작은 바퀴가 달린 수레’라고 비유하며 “두 바퀴의 크기가 맞지 않으니 제자리를 뱅뱅 맴돌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화와 투쟁이 같이 굴러가려면 크기가 같아야 한다”면서 “바퀴가 굴러가야 할 방향은 민주노총만이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대담=김정곤 사회부장 mckids@sedaily.com
-위원장 선거 당시 슬로건이 ‘고립·분열·무능을 뛰어넘어 새로운 30년을 개척하는 민주노총’이었다. 2년7개월간의 임기 동안 성과가 있었나.
△김명환 집행부의 의미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노동환경에 어떻게 구현하느냐였다. 첫 성과는 대표성이다. 100만 조합원을 거느린 제1 노총으로 성장했다. 그만큼 위상도 높아졌다. 두 번째는 여성·청년·비정규직 등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와도 결합해 이들을 대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과 적극적으로 결합해 민주노총의 사회적 발언력으로 키워냈다.
-성과만큼 아쉬운 일도 있을 텐데.
△지금 사실 아쉬운 상황이지 않나(웃음). 조직이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도 커졌다는 의미다. 그 영향력에 대한 책임도 커져야 한다. 제1 노총이 됐다는 것은 강해졌다는 뜻이다. 이 힘을 자신의 이익이나 근로조건을 강화하는 데 쓰기보다 어렵고 약한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 연대와 대화·투쟁이라는 세 가지 축이 촛불 이후 새롭게 나타난 활동방향이었다. 노사정 대화를 진행해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과정을 겪었으면 했는데 계속 멈췄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도 추인받지 못했다. 작은 부분이라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승인하는 경험이 있었다면 더 큰 성취로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나.
△역사 때문이다. 1995년 출범 이후 노동에 대한 적대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조직을 지키는 것이 승리라고 여겨졌다. ‘민주노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체화된 상태에서 양적 성장에 걸맞게 긍정적 방향으로 바꿔내는 것이 어려웠고, 결국 숙제로 남았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됐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내가 바퀴를 보는 사람이 아닌가(김 전 위원장은 코레일 디젤기관차 기술자 출신이다). 민주노총에는 투쟁과 교섭이라는 두 바퀴가 있지만 투쟁의 바퀴는 크고 교섭의 바퀴는 작다. 그러면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 대화와 투쟁이 같이 굴러가려면 크기가 같아야 한다. 굴러가야 할 방향은 민주노총이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어야 한다. 사업장·산업별 교섭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대화가 같이 진행돼야 한다. 단위 사업장이 갖게 되는 기업 복지·복리후생·고용안정이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사용자 단체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도 내부 노조만 관리하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1월 경사노위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대의원회의에서 부결됐다.
△날짜도 기억한다. 2019년 1월28일. 위원장이 직권상정했는데 동의를 얻지 못했다. 민주노총에는 사회적 대화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상처가 있다(1998년 노사정위원회 합의문에 비정규직·파견제 도입이 포함됐다. 김 전 위원장은 노사정위원회를 청년·비정규직 등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보고 경사노위로의 개편을 주장했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보고 민주노총이 주도해 경사노위를 만들었다.
경사노위 법에는 안건 의결을 위해 위원의 3분의2가 출석해야 하고 그중 3분의2가 동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노사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갈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국회에서 그 힘이 작동한다. 사회적 합의가 주는 여론의 힘이 매우 크다고 느꼈지만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극단적 대결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경기장 안에서 충돌이 있으면 조절이 되지만 밖에서 싸우면 그렇지 않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못해 올해 총리실에서 추진했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도 같은 상황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현장을 순회했다. 재난은 모두에게 오지만 피해는 같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안에서도 차이가 있다. 정부 정책은 기존의 방식대로 금융 지원과 대기업 중심이었다.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사정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합의할 만하니까 합의했다. 합의를 위한 합의는 아니었다. 어떤 조합원이 ‘김명환은 자본의 하수인’이라고도 했지만 독소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제도의 개악을 동반하는 것도 아니라면 내용의 취지를 설명하고 합의하려 했다. ‘자본에 굴복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해고 금지가 없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합의문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합의문 추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정파’라는 말을 썼다. 민주노총에서는 금기어인데. 어떤 생각이었나.
△‘의견그룹’이라는 말도 쓴다. 정치적 견해에 차이를 두고 활동하는 조직은 노동운동에서 계속 있었다. 금기어는 아니라고 본다. 의견그룹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파의 결정과 판단이 대중조직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의원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용적 논쟁을 하기보다는 세몰이를 하는 양상이었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대화를 놓고 논란을 빚는 모습을 ‘성장통’으로 표현했다. 민주노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합의문을 추인하지 못한 결과보다 이를 놓고 논쟁한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반대한 것을 대의원대회에 왜 상정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지만,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총에는 아픈 시기일 수도 있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25년의 역사에서 조직이 커졌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질서를 피해갈 수 없다면 당면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노동이 진화하는 과정을 민주노총이 겪어야 하고 참여해서 바꿔야 한다.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이 겹치는 상황은 예측을 불허한다. 하청·불안정노동을 기준으로 삼고 어떤 책임을 다할지 기준을 잡아야 한다. (사회적 대화라는) 경기장 안과 밖의 투쟁을 같이해야 하지만 경기장 밖의 투쟁이 강화돼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시 합의문 추인을 시도할 때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
△당연하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남은 5개월의 임기를 채우라고 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위원장직이라면 내려놓아야 한다고 봤다. /정리=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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