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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옛것을 품은 '종로의 병풍' 센트로폴리스

■낮엔 고옥들과 어우러지고…밤엔 도심 밝히는 등대로

600년 역사 깃든 곳에 '전통 창호 외관' 114m 우뚝

1층은 '옛길 존중' 공공보행로…소통의 장소로 창조

재개발 과정서 발견된 유적은 지하 1층 통째 전시

기부채납 대신 용적률 상향…市·사업자·시민 윈윈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 전경.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로 나오면 114m의 높이를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종로구 공평동의 거인을 만날 수 있다. 전통 창호처럼 창들이 배치된 독특한 외관을 보이는 ‘센트로폴리스’가 그 주인공이다. 센트로폴리스는 중심을 뜻하는 단어 ‘센트로(Centro)’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를 합친 이름이다. 의미 그대로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공간적 특성을 계승하면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심의 핵심공간이라는 뜻이 담겼다. 이름에 걸맞게 센트로폴리스는 바로 옆에 위치한 ‘종로타워’라는 또 다른 거인과 그 뒤편에 늘어서 있는 난쟁이 인사동 고옥들과 함께 어우러져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종로 도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 건물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해당 건물은 공평지구 재개발 사업으로 들어선 빌딩으로 진행 과정에서 발견된 각종 문화유산을 건물 지하 1층에 통째로 보존한 국내 최초의 사례다. 첨단 빌딩 내에 유적전시관을 통째로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건축주·설계자·서울시 등 이해관계자의 상호 간 배려가 있었던 덕분이다. 이들이 합의해 만든 ‘공평동 룰’은 역사와 개발이 상생하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센트로폴리스 A동 주출입구.


☞ ‘공평동’이라는 공간과 ‘센트로폴리스’라는 건물

서울의 종로는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조선 시대부터 수많은 사람이 모인 역사의 현장임과 동시에 현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의 도심이기도 하다. 종로 공평동이라는 공간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듯 건물과 건물 사이에 겹겹이 쌓인 과거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마천루 사이로 굽이치는 옛 골목길, 그 길에 늘어진 수많은 고옥(古屋)들은 600년 넘은 수도 ‘서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역사를 또 다른 역사로 계속해 덧씌운 이 공간은 단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산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종로에 대해 ‘모든 혁신 속에서, 이 600년 된 도시 또한 그것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북촌마을의 한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방문객들은 겸손과 검소함의 유교적 가치관을 느끼게 된다’고 지난 2012년 평가한 바 있다.

‘센트로폴리스’ 빌딩은 종로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거대 건물에 대한 고민이 선행됐다. 건축가는 이 공간에 들어서는 센트로폴리스라는 건축물이 종로라는 지역이 가진 맥락을 흡수하면서 도시의 새로운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건축이라기보다는 도시의 한 장소로 읽히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인접한 인사동 등 전통 건물의 외관을 해치지 않게 일부러 ‘병풍’ 같은 느낌으로 설계됐다. 건축물은 햇빛이 밝은 낮 동안 창덕궁·인사동 고옥들과 같은 전통의 공간들에서 바라보더라도 무던한 외관을 보이지만 야간에는 도심 한복판의 랜드마크로 그 모습을 자랑한다. 건축가의 수많은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보수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도시 패턴을 제공해 밤이 되면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도시의 등대’로서 건축물이 서 있기를 바랐다. 고민이 드러난 곳이 건물 1층이다. 로비 등이 위치한 기존 오피스 건물과 달리 센트로폴리스 1층에는 공공 보행로가 위치한다. 기존 대지에서 발견된 집터와 옛길의 모습을 땅에 무늬로 새기는 등 옛길의 공간적 기록을 존중한 결과다.

이 때문에 해당 공간은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길이 꺾이기도 하고 바닥의 높이차도 다르다. 공적 공간인 보행로가 사적 공간인 건축물 안으로 침투해 입체적으로 구축되도록 한 것이다. 보행자 누구에게나 개방된 길이 건물 내부로, 또 지하 공간으로 침투해 서로 교류하는 장소로 창조되도록 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첨단건물 안에서 숨 쉬는 ‘유적 전시관’

종로라는 공간은 서울의 도심으로 개발돼야 하지만 동시에 보존해야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개발 도중 역사적 의의를 지닌 문화재가 출토되더라도 문화재 보존 비용, 사업자의 반발 등의 문제로 보존에는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발굴된 문화재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건물 내외부의 작은 면적에 보존하는 식이다.

하지만 센트로폴리스는 건물 지하 1층을 통째로 보존공간으로 활용해 출토된 문화재를 건물 내 3,817㎡에 달하는 공간에 온전히 복원했다. 이는 문화재 보존방법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을 이룬 방식으로 대도시 도심 유적을 전면 보존한 최초 사례다. 현재 큰 의의로 평가되지만 건축 진행 당시에는 사업의 좌초 여부와도 연결된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개발 당시 사업 시행에 앞서 출토된 108동의 건물지, 조선 시대 골목길 등의 유구와 1,000여점의 다양한 유물들과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졌다. 수차례 전문가 검토회의와 문화재 심의, 그리고 사업자와 서울시 간의 지속적인 협의 끝에 건물 지하 1층 전체를 유적전시장으로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이에 상응한 용적률 상향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른바 ‘공평동 룰’에 의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건물과 함께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의의를 인정받아 센트로폴리스는 201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박원근 심사위원은 “문화유산을 원래 위치에 원형으로 보존하는 방법으로 건축을 추진함과 동시에 보전된 유적을 전시 관람할 시설을 만들어 기증하고, 시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용적률을 높여줬다”며 “국가와 사업자와 시민이 모두 ‘윈윈’한 모범적 개발사례의 중심에 있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했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사진제공=이남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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