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사학자인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는 코로나가 창궐하는 와중에 공교롭게도 마크 해리슨의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라는 책을 번역했다. 700년에 걸쳐 6개 대륙에서 벌어진 전염병과의 투쟁을 꼼꼼하게 살핀 내용인 만큼 이 시국에 더욱 의미 있는 책이었다. 이 명예교수는 번역하는 와중에 본인의 페이스북에 코로나 사태 속에서 느낀 생각들도 함께 써내려 갔다.
신간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는 이 명예교수가 코로나 와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페이스북에 틈틈이 쓴 내용을 묶은 책으로, 코로나 창궐기에 한 역사가의 내면에 나타난 세계관과 시각의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저자는 코로나 사태가 근대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치명타를 안겨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코로나 위기 속 서구 주요 국가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나라에서 방역 당국자들의 공적 헌신은 나타나지 않았고, 시민의 자율적인 규제도 없었다. 대신 팬데믹 위기 후 한국 사회는 새로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이 “남을 바라보고 뒤쫓고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1만3,9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