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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열면 클린존…코로나 이후 집 풍경도 바뀔까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가족이 모이는 거실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함께 식사하는 주방이 배치돼 있다. 먼저 집에 와 있는 가족들에게 인사한 후 방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는다.’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집의 구조이자 일터나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들의 동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겪고 난 후에도 이 같은 평면과 동선은 적합할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먼저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이 가족들에게도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뉴노멀 시대의 집 평면은 어떻게 변할까. 이승택 에스티피엠제이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에 대해 “앞으로는 각자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나와 거실에 모이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염두에 둔 평면설계는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5월 성남시 복정 1블록에 공급할 공동주택 설계공모에서는 지금의 아파트 구조와 사뭇 다른 평면구조가 나왔다.

LH가 지난 5월 실시한 성남 복정1블록 공동주택 설계공모에서 제안된 신평면./사진제공=대한건축학회·SH


예를 들어보자. 현관문을 열면 오른쪽에는 신발장과 건식 세면공간이 있다.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는 곧장 샤워가 가능하도록 맞은편에 욕실을 배치했다. 여기까지의 공간은 중문으로 내부 공간과 구분된다. 거실에 들어가려면 중문을 열어야 하며 거실로 가기 전에는 세탁실이 있다. 외부 바이러스나 세균으로부터 나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보호하기 위한 평면구조인 셈이다.

코로나19로 바뀌는 것은 아파트 평면뿐이 아니다. 집의 의미도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집은 휴식공간뿐 아니라 업무와 스포츠·레저를 즐기는 생업과 생활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비대면 경제가 부상하면서 가속된 온라인 소비행태를 반영하는 거점 기능도 집이 담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기훈 국토교통부 서기관은 이와 관련해 6월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심포지엄에서 “온라인 경제와 재택근무 활성화로 업무와 소비 방식이 변화될 것으로 예측한다”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이에 따른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시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간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현재의 고밀 집적보다 개개인이 누릴 공공의 공간이 넓어져야 하며 증가하는 온라인 물류를 수용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장운규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은 삶을 담아내고 변화시키는 그릇”이라며 “코로나19로 건축과 도시의 프로토타입(원형)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노멀 시대의 공간 변화가 시작됐다.

영화관이 됐다가 놀이방이 됐다가…뻔한 아파트 평면은 이제 그만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열린 심포지엄에서 “현재의 집 평면은 주중에 어른들은 직장에,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평일 저녁과 주말에만 모이는 라이프 스타일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적 형태로 이른바 ‘알파룸’ 기능을 강화한 주거 평면 설계가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부 공급되는 공동주택에는 알파룸의 형태를 제공해 방으로 쓰거나 아니면 거실이나 작은 방과 통합해 필요에 따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개념을 현관부터 작은 방, 거실까지 확장해 아예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성남 복정 1블록 공동주택 설계공모에서 제안된 단위세대 평면 구조./사진제공=대한건축학회·SH


이명식 동국대 건축학과 교수가 소개한 평면을 보자. 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모한 성남 복정 1블록 공동주택 설계에서 제안된 단위세대 내 평면 중 일부다. 이미 공급 당시부터 공간 구조가 정해져 있는 평면이 아니라 가족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확장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한 평면이다. 홈 오피스가 넓게 필요하다면 작은 방 2개를 합칠 수 있고, 아이가 넓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 거실과 작은방 일부를 합쳐 세이프티 존을 구성하는 형태다.

이 같은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택 건축공법 자체가 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아파트는 건물의 하중을 벽이 받쳐주는 구조의 ‘벽식형’ 구조다. 이는 구조를 변경하기 위해 벽을 허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에 벽이 아닌 기둥을 이용해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식 공법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 교수는 “앞으로 10~30년 뒤 많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벽식 구조의 집이라면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지만 기둥식이라면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발코니 비확장형 주택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확장해 거실과 방의 크기를 넓히기보다 비확장된 형태로 각각 간단히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소형 정원으로 꾸밀 수 있는 공간 등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발코니 비확장이 공급의 기본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자 살아도 넓게 살고 싶어…다시보자 대형평면




시장에서는 대형 평형의 주택에 대한 인기가 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에 머무는 공간이 늘어나는 만큼 1인당 필요한 주거 공간도 확대되는 것이다. 유 교수는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기존보다 155%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에 냉장고와 TV 등 가전제품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는데다 에어프라이어·식기세척기 등 10년 전까지 일상적이지 않던 소유물도 확장됐다. 앞으로 주거 사이즈는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건축 학계와 시장의 전망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진행한 한 부동산 관련 강연에서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1인당 적절한 면적은 전용 29.7㎡였는데, 코로나19 이후 40㎡로 늘어났다”며 “결국 3인 기준으로 전용 면적이 120㎡를 넘어야 하는데, 최근 짓는 아파트에서는 이런 대형 평수를 찾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집 안에도 자연이 필요해…테라스주택 늘어날 듯


코로나19는 비말, 곳곳에 남아 있는 바이러스로 전파된다. 코로나19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 마스크와 거리두기,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집에서 머물기 등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이유다.

다만 내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늘수록 외부 공간을 접목하고자 하는 욕구는 커지게 마련이다. 가장 안전한 곳이 돼야 하는 집 역시 공기정화와 자연환기에 대한 요구는 커진다. 이에 대한 건축적 대안이 바로 테라스다. 김은희 건축도시 공간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결국은 주택 내부에서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테라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가 설계한 밀라노의 ‘수직 숲’ 아파트. 테라스 전경/사진=스테파노 보에리 공식 홈페이지


각종 상업적 이유로 2010년 이후 국내에서 테라스를 갖춘 공동주택을 찾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내외 건축가들은 이 같은 자연친화적 환경을 테라스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를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 회자되는 해외 사례는 이탈리아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가 2014년 밀라노에 선보인 ‘수직 숲’ 아파트다. 타워형 공동주택인 이 건축물은 주거별로 발코니를 설치하고 이곳에 식물을 심었다. 총 2개의 타워에 380그루의 나무와 1만1,000개의 피복식물, 키가 작은 관목은 5,200그루가 들어갔다. 사실상 단지랄 것도 없이 나 홀로 아파트에 가까운 집이지만 거실 창호를 열고 테라스에 나오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쾌적함을 상상해보라. 개인 공간인 집이 테라스를 통해 자연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간 테라스 하우스라는 형태의 집이 적지 않게 공급되는 추세다. 다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테라스는 이전의 주거 상품과 달리 테라스를 전면에 내세우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유현준 교수가 설계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한 한 고급 테라스 하우스의 경우 폭이 3m에 이르는 테라스가 적용되기도 했다.

개성 존중하면서도 열린 공동체 보장할 수 있어야


뉴노멀 시대에는 주거에 대한 사고도 바뀔 것이다. 단독 주택도, 아파트도 아닌 아예 새로운 형태의 주거지역에 대한 제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는 ‘땅을 분양하는 아파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토지 위에 건물을 올리고 세대를 나눠 각 공간을 분양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예 층별로 토지를 분양한 후 그 땅에 개개인이 각자의 단독주택을 지어 사는 시스템이다. 장 교수는 “자연환기와 채광을 극대화한 열린 커뮤니티이면서도 개인적 실존을 보장한 주거 시스템”이라며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 구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가 제안한 ‘땅을 분양하는 아파트.’ 각 층에 단독주택을 짓는 구조./사진제공=장윤규 교수


다만 이 같은 변화에 제도적·산업적 제한은 분명히 존재한다. 테라스 공간의 경우 현재 분양면적에 포함되지 않아 이를 넓힐수록 사업성이 떨어지게 된다. 결국 용적률·건폐율 등의 건축 기준을 변화시켜야 하는 변수가 있다. 기둥식 구조 역시 사업성의 문제와 닿아 있다. 기둥식 구조를 접목한 주택은 이미 ‘100년 주택’을 위한 조건 중 하나로 시장에서 주목하고 있지만, 건축비가 더 늘어나 고급 아파트에만 적용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인류사적 재난은 집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업성·정책이라는 변수도 여전히 존재한다. 집은 어떻게 바뀔까.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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