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 주장한 김원웅에 격분한 통합당
김원웅 회장은 15일 제주시 조천체육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김률근 제주도지부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서울현충원에서 가장 명당이라는 곳에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자가 묻혀 있다. 친일·반민족 인사 69명이 지금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한민국은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 역사의 주류가 친일이 아니라 독립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친일청산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특히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민족반역자”라고 하는 등 민감한 이슈도 언급했다.
김 회장의 기념사는 즉각 반발을 낳았다. 김기현 통합당 의원은 김 회장의 기념사가 나온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낀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자신의 배를 채운 민주당 윤미향 의원 같은 사람도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에 대고 친일청산 운운하냐”고 적었다. 그는 이어 “깜냥도 안 되는 광복회장의 망나니짓에 광복절 기념식이 퇴색돼버려 안타깝고 아쉽다”라며 “정작 일본에는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면서, 거꾸로 국민을 상대로 칼을 겨누고 진영논리를 부추기는 사람은 광복회장의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같은 당 허은아 의원 역시 “사회 분열의 원흉이 된 김원웅 회장의 기념사는 도저히 대한민국 광복회장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아니 나와서는 안 될 메시지였다”라며 “반일 친북, 반미 친문의 김원웅 회장은 파직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기다 김 회장의 다음 순서로 광복절 기념 축사를 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김 회장에 반박했다. 원 지사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는 우리 국민 대다수와 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다”며 “지금 75주년을 맞은 광복절에 역사의 한 시기에 이편저편 나눠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받아야 되는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조각내고 국민을 다시 편 가르기 하는 그런 시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또 “비록 모두가 독립운동에 나서지 못했지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갔던 게 죄는 아니다”며 “앞으로 이런 식의 기념사를 또 보낸다면 저희는 광복절 경축식의 모든 행정 집행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광복회 측에 경고까지 했다.
文 정부 작심 비판한 반기문에 발끈한 민주당
이날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서 나왔다. 반 전 총장은 15일 광복 75주년을 맞아 발표한 글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운영 전반에 대한 아쉬움과 우려를 구체적으로 토로했다.
반 전 총장은 우선 현 정부의 국정 철학에 대해 “정부는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국정 철학의 하나로 내세웠다”며 “그러나 이 가치가 정권 차원에서 그리고 선택적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고 했다. 그는 이어 백선엽 장군의 사례를 거론하며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을 떠나보내면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보훈의 가치를 크게 폄훼시켰다는 아쉬움이 있다”고도 했다. 백 장군이 타계한 지난달 여권을 중심으로 백 장군의 친일 행적을 부각하며 정부가 장례식과 영결식 참석을 사실상 거부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그러면서도 현재 성추행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비판이 많았다.
반 전 총장은 최근 발표된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기후변화는 목전에 다다른 위협임을 통찰해야 한다”며 “지난 7월 14일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그린 뉴딜에는 ‘2050 탈탄소’에 대한 언급없이 성찰과 철학이 결여된 채, 단기적 사업에 치중한 성격이 짙다”고 했다. 또 거대 여당으로 꾸려진 21대 국회가 임대차 3법 등의 입법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속전속결 처리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작심 비판했다. 그는 “국민통합을 위해 협치해야 한다”며 “21대 국회가 토론과 타협이 실종됐던 20대 국회와 다를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망이 크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의 성명이 알려지자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뒤에 숨긴 발언들”이라며 맹공격했다. 윤 의원은 “여러 영역에서 오래 활동하셨던 국가 원로의 깊은 혜안은 우리 사회에 진한 울림을 준다”면서도 “다만 정치적 목적을 뒤에 숨긴 발언들은 오히려 반 총장님이 말씀하신 ‘국민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또 “3년 전에 불과 3주만에 국가 통합의 꿈을 접겠다고 물러서셨던 분이, 정부가 우리 사회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지난 3년 간은 특별한 말씀이 없으시다가 최근 들어 정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시는 것도 죄송하지만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냉소했다. 그는 이어 “지난 3년 간 문재인 정부가 한 치의 잘못없이 완벽하게 일해 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면서도 “그러나 단연코 ‘당장의 정치적 이득에 얽매여 이념편향과 진영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해 오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다른 날도 아닌 오늘(광복절),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백선엽 장군을 언급하시는 것이야말로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것 아닐까”라며 “최소한 오늘은 아니어야 했다. 광복절인 오늘, 친일 의혹 인사에 대해 걱정을 하시는 것은 역사인식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갈등과 비난으로 얼룩진 광복절…국민 피로감만 남아
유력 인사들의 ‘기념사 폭탄’은 결국 이날 행사의 파행으로 이어졌다. 15일 제주시에서 진행된 광복절 경축식은 원희룡 제주지사가 김 회장의 기념사를 문제 삼으며 행사가 파행했다. 행사에 참여한 광복회원과 독립유공자들이 “왜 친일을 옹호하냐”고 반박하며 불쾌함을 드러낸 것이다.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일부 유족은 불쾌함을 드러내며 행사장을 떠나기까지 했다. 해방과 건국을 축하하는 광복절이 정치인들의 막말과 비난으로 의미를 잃자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모습이다.
광복절인 15일 광화문에서는 당초 100여명의 참여 인원을 신고한 보수단체의 집회에 수 만 명이 모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잇단 성추문 등을 지적하며 “대통령 퇴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수칙도 준수하지 않은 채 도로를 점거해 시민들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경찰은 집회 안전을 기하고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6,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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