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극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국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이르면 이번 주 한국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양 정치국원이 방한한다면 우리 정부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을 본격 논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등 미국의 강한 ‘러브콜’을 받는 상황에서 중국이 ‘시진핑 연내 방한’ ‘대북정책 역할론’을 앞세워 우리 정부에 중립이나 중국 지지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이 경우 그간 이어온 ‘줄타기 외교’가 다시 한 번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최근 외교부 1차관에 외교 경험이 거의 없는 외부 출신을 앉혀 앞으로 한미보다 한중 관계를 강화하는 게 아니냐는 등 여러 해석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양제츠, 금주 방한 유력... ‘미중갈등 중립 또는 中지지’ 요구할 듯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양 정치국원은 이번 주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양 정치국원의 방한 일정을 두고 막판 조율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정치국원의 한국 방문은 지난 2018년 7월이 마지막이다.
양 정치국원은 특히 시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서울을 찾을 예정이다. 그는 우선 방한 기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남북·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 방안과 한반도 주변 정세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6월 북한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를 전환하기 위해 중국에 적극 협조를 구할 가능성이 높다. 양 정치국원이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새 외교·안보 라인과 상견례를 할 수도 있다.
양 정치국원이 이번에 한국을 전격 방문하는 것은 최근 극에 달한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미국으로 급격히 기우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미국이 최근 화웨이·틱톡 등 중국 기업을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시키고 홍콩보안법 제정을 규탄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국에 중립 유지나 중국 지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이 내밀 수 있는 대표적 카드로는 ‘시진핑 연내 방한’과 ‘대북정책 역할론’ 등이 꼽힌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 정치국원 방한에 대해 “확인해줄 게 없다”면서도 “시 주석은 여건이 갖춰지면 방한하는 것으로 양측이 확고하게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밝힐 사항이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중한 관계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G7 참여,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등 거론 가능성
양 정치국원이 우리 정부에 언급할 수 있는 문제로는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말 꺼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확대와 청와대가 지난달 말 발표한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등이 거론된다.
특히 G7 초청과 관련해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베를린을 직접 방문해 독일의 지지를 끌어내며 중국의 애를 태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물론 러시아, 인도까지 G7 회의에 초청하겠다고 나서며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바 있다. 강 장관의 이번 해외 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이날 강 장관과 ‘제2차 한독 외교장관 전략대화’를 가진 뒤 연 기자회견에서 “주요 7개국 정상회담에 한국의 참석을 매우 환영한다”면서 “한국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국가”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어떤 국가들이 (G7 확대에) 참여하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G8이었던 러시아를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강 장관은 “독일은 유럽 내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고 양자·다자 차원에서 핵심 협력 대상국”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 침체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정한 다자체제가 필요하다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포스트 코로나 경제회복 과정에서 계속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역시 중국엔 매우 민감한 문제로 지목된다. 미국이 한국의 탄도미사일을 활용해 북한 전역은 물론 중국 베이징까지 타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완전한 미사일 주권 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을 해나가자”며 현재 800㎞로 묶여 있는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겠다는 뜻을 밝혔다.
美비건은 ‘반중전선’ 참여 요구... 정부 고민 깊어질 듯
양 정치국원의 방한이 성사되면 미중 갈등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던 한국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안보와 경제 면에서 양국은 모두 한국에 중요한 파트너인 데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역점 과제가 북한 문제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결코 도외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점점 강하게 압박이 들어오는 미국 측의 ‘반중전선’ 동참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겸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7일부터 9일까지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 정부에 ‘반(反)중국 연합전선’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9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비건 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대해 논의했다”며 “여기에는 (미국과)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 간의 협력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훌륭한 의사결정 과정과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해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것도 논의 내용에 있었다”고 소개했다. 한국이 중국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우리 외교부는 이 같은 미국 국무부 발표에 일단 언급을 삼갔다.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지난달 9일과 10일 일본에서도 “훌륭한 의사결정 과정과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해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것을 논의했다”고 전해 반중 문제를 거론했음을 암시했다. 미국은 이뿐만 아니라 최근 글로벌 공급망의 탈(脫)중국을 목표로 친미 국가들로 구성하려는 경제블록 ‘경제번영 네트워크(EPN)’와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제품 불매 전략에도 한국의 참여를 압박한 바 있다.
靑, 외교부 1차관에 40대 ‘非외교관’ 임명... ‘한미’보다 ‘한중’?
한편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진 청와대의 최근 외교부 차관 인사는 외교부는 물론 관가 전반에 여러 모로 큰 충격을 줬다.
청와대는 지난 14일 차관급 인사에서 최종건(46)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을 신임 1차관에 임명했는데 이는 대다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인사였다. 전임인 조세영 전 외교부 1차관이 정부 안팎의 신임 속에 무난하게 업무를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최 신임 차관은 역대 최연소에 외무고시 출신이 아닌 첫 1차관이었다. 웬만한 외교부 국장들보다도 어린 차관이 임명되는 혼란 속에서 조 전 차관은 이임식도 없이 외교부를 떠났다.
최 신임 차관은 국방과 통일 관련 업무 외 외교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인사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외교부 1차관은 한미·한중·한일 외교는 물론 외교부 인사·예산까지 총괄하는 대한민국 외교 전략의 핵심 직책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과 함께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라인’으로 꼽히는 그는 국가안보실에서 대표적인 자주파로 분류됐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는 끊임없이 갈등설을 빚었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에 두는 문재인 정부의 특성상 최 신임 차관 인사가 한미관계보다는 한중관계를 강화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인사 시기가 하필 양 정치국원 방한 조율 시점과 겹친 것도 묘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교부는 코로나 진원지 ‘후베이성’ 여행경보 완화
이와 별도로 외교부는 지난 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원지로 꼽히는 중국 후베이성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7개월 만에 하향하는 조치를 내렸다. 기존 ‘3단계(철수권고)’에서 다른 중국 지역과 같은 ‘특별여행주의보’를 적용한 것이다. 특별여행주의보는 단기적으로 긴급한 위험에 대해 발령한다.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보다는 높지만 3단계보다는 낮다.
외교부는 “후베이성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중국 다른 지역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현지에 생활 근거지를 둔 자영업자와 유학생 등 우리 국민이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다만 후베이성으로 가는 불필요한 여행은 취소하거나 연기하길 권했다. 또 이곳으로 복귀하는 국민은 위생수칙 준수, 외출·이동 자체, 타인과의 접촉 최소화 등을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1월25일 후베이성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해당 지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3단계로 상향한 바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