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불타는데 워싱턴은 놀고 있다. 미국의 현 상황을 묘사하는데 이보다 적절한 비유는 없을 것이다. 실업률이 대공황 이래 거의 볼 수 없었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의회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경기부양을 위한 협상을 중단했다.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은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자리는 거의 없고 소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업체들도 줄도산 사태를 맞고 있다. 지금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훨씬 위험한 비상상황임에도 워싱턴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의 협상결렬은 정치적 양극화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절충해 합의를 이루기보다 상대 당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지지층을 결속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확신하는 민주당은 공화당에 더 큰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실질적인 견해차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공화당 의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로 인해 부채부담이 수용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해 결국 미래의 국가재정 건전성을 해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틀렸거나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지금 미국 경제가 처한 위기는 과도한 부채나 금융시스템 붕괴 혹은 경기침체를 초래하는 일상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먼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감염 우려로 활발하게 이뤄지던 상품과 용역의 매매가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정부 봉쇄조치까지 가세하며 경제의 많은 부분이 멈춰 섰다. 경기침체라기보다는 경제마비에 가깝다. 백신 접종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수준의 경제활동이 재개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무런 잘못 없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지원책이 전통적인 경기부양 프로그램보다 재난구제에 가깝다는 폴 크루그먼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공화당은 여전히 ‘공적 구제’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이들은 특히 민주당이 장악한 시와 주 정부에 대한 지원에 난색을 표한다. 이들이 처한 경제적 난관은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과 시장들의 미숙한 관리와 방만한 운영 때문이라는 입장에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견해다. 물론 뉴욕시가 잘못 운영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뉴욕시 지하철 탑승객 수는 85%나 격감했고 판매세 세수는 30% 감소했다. 이는 부실운영이나 방만한 관리와 거의 관계가 없다.
또 다른 의미에서도 ‘비상한 시기’다. 초저금리 상태에서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는 미국과 영국·일본 등은 지출 경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맞이했다. 현재 미국 재무부는 30년 만기 국채를 1.5% 이하의 금리로 발행할 수 있다. 지금 양당은 1조달러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1.5%의 30년 만기 국채이자를 적용하면 정부의 부채경비는 지난해 연방예산의 0.5%에도 못 미치는 연 150억달러에 불과하다. F-35 전투기 구입 사업에 들어가는 경비 정도면 의회의 교착상태를 타결해 미국 경제의 숨통을 터줄 수 있다.
2009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수백명의 저명한 경제전문가들과 폴 라이언을 비롯한 수십명의 공화당 지도자들 및 영향력 있는 공익집단들은 경기부양법과 연방준비제도의 양적 확대조치가 고도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경제 붕괴와 달러 가치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는 정반대였다. 미국 경제는 평화기의 최장기 회복세를 기록했고 달러화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미국 은행들의 체질은 강화됐고 주식시장은 세계의 다른 주요 증시를 제치고 가파르게 상승했다. 정부의 기록적인 위기관리 실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들었던 똑같은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2009년에 빗나갔던 전망이 이번에는 적중할 것이라고 아우성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저인플레 시대를 살고 있다. 적어도 내년 한 해 동안 소비자들은 여행과 외식을 자제하고 대중오락과 스포츠를 멀리하면서 지출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세계화 역시 경비를 낮은 수준에 묶어두고 임금상승 압박을 억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 낮은 경비로 양당의 협상타결을 가로막고 있는 1조달러의 지출 격차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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