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금융통화위원 시절 ‘왕 비둘기’로 불렸다. 한국은행 금통위원 재임 기간 (2016.5~2020.4) 내내 줄곧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색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금통위가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할 때 동결을 주장하며 반대했고 금리 동결을 결정할 때 다섯 차례나 인하해야 한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금통위 입성 직전인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시절에는 대놓고 금리 인하를 촉구해 한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성향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반세기 동안 쌓아온 인플레이션 파이터 (inflation fighter)로서 한은의 명성이 이제는 극복해야 할 레거시(legacy·유산)가 아닌가”라며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디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명성에 걸맞게 한국 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성을 줄곧 경고했다.
-실물경제가 냉골인데도 부동산은 펄펄 끓는다. 이런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경기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완화적 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수요확대 정책이다. 문제는 수요를 늘렸는데도 이런저런 규제로 공급을 틀어막았다는 데 있다. 수요가 확대되는데도 공급을 막으면 가격만 올라간다. 공급이 탄력적으로 움직여야 가격은 덜 오르고 실물경제를 자극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통화정책이 수요확대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키는 여러 경로가 있는데 부동산 규제는 그 중요한 경로 하나를 차단했다.
-부동산 문제는 공급확대로 풀자는 의미인데.
△물론이다. 공급이 부족한 재화의 가격 상승은 당연한 귀결이다. 종로와 을지로를 뉴욕 맨해튼처럼 왜 못 만드나. 50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게 하면 굳이 강남 집값과 싸울 일도 없다.
-분양가상한제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왜 강행할까.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눈에 보이는 것만 하려 한다. 예를 들어 낡은 저층아파트를 재건축하면 집값이 올라가고 주변 집값도 덩달아 오른다. 분양가를 억누르면 집값이 잡힐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전보다 살기 좋은 집이 생기고 동네도 좋아지면서 그만큼 집값이 오르는 것은 경제발전의 한 단면이다. 분양가상한제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가격 규제가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현 정부는 경제학 교과서를 믿지 않는 것 같다. 시장과 균형가격·생산성·효율·경쟁 등은 경제학의 기본개념들이다. 그런데 경제정책을 설명하면서 그런 개념들이 사라지고 대신 정의와 형평·공정 등이 자리 잡았다. 경제정책은 없고 사회정책만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경제팀 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을 빼면 모두 정통 경제관료인데.
△퇴임 후 사석에서 물어보라.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랬겠느냐”고 답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분들이 자발적 의지로, 혹은 진심으로 맞는 방향이라고 판단해 정책을 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팀이 독자적으로 뭔가를 할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관료들이 큰 틀에서 청와대 및 여당과 보조를 맞춰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세부적인 것은 일선부처의 영역인데 이것마저 상당히 막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얼마 전 정부가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대로만 된다면 효과가 있겠지만 시장은 반신반의한다. 정부는 투기가 없어질 때까지 대책을 내겠다고 하지만 이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이른바 ‘투기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격이 어느 순간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다. 그런 공포는 실제로 공급이 많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발생한다.
-부동산 급등은 초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탓이라는 지적이 있다.
△저금리가 부동산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은 팩트다. 오히려 그렇지 못하면 문제다. 하지만 부동산 과열은 전국적인 현상이 아니다. 지역별 수급이 불균형을 이룬 것이 문제다. 기준금리가 서울과 지방에서 차별적으로 적용되는가. 부동산 과열은 통화정책에 의한 전국적 수요확대보다 특정 지역의 공급제약이 근본적 원인이다. 통화정책은 상대가격을 제어할 수 없다. 쉽게 말해 강남 아파트 가격이 10% 올랐고 다른 물가상승률은 0%라면 통화정책이 그 차이를 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기준금리(0.5%)를 더 내릴 여지가 있는가. 한은은 기준금리가 실효 하한에 가까워졌다고 했는데.
△물리적 한계는 없다고 본다. 기준금리 0%마저 하한이 아닐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나라도 있다. 일본은 -0.1%이고 스위스는 -0.75%다. 우리보다 소득도 낮고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체코는 제로금리를 5년 동안 유지했다. 실효 하한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통화정책에 한계가 있으니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에 마이너스라고 본다. 할 수는 있는데 바람직한가 아닌가의 문제이지 ‘우리는 할 수 없다’며 애초부터 뒤로 물러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리정책에 한계가 있다면 비전통적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그래도 한은은 ‘한국형 양적완화’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도 동원하지 않았는가.
△비상사태 때 그런 의지를 보인 것은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평상시 바람직한 정책수단은 금리정책이다. 금리정책이 가장 무차별적이고 (수혜자를) 선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주체의 개별 사정을 어떻게 당국자가 다 알 수 있겠는가. 흔히 ‘돈이 필요한 곳에 가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표현을 싫어한다. 그 판단은 시장의 몫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은 일종의 관치금융 아닌가.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하려면 당국이 시장보다 개별 경제주체의 상황을 더 잘 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전제가 맞는다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나는 이 전제를 믿지 않는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만약 코스피가 (코로나19 충격이 강타한) 1,500 언저리 (3월19일 1,457)에 머물러 있다면 소비가 이 정도로 회복됐겠는가. 비단 ‘부의 효과(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비 증가)’만이 아니다. 금리 인하의 실물경제 효과는 부채경감이 첫 번째이고 다음이 환율이다. 기준금리를 낮추지 않았더라면 환율이 지금 수준일까. 환율이 더 내려가 수출기업이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다. 물가가 지나치게 낮지만 디플레이션 우려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 상황은 디스인플레이션 (disinflation· 물가상승 둔화)이라는 진단이 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앞으로 디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없는지 여부다. 인플레이션이 물가안정 목표치를 한참 밑돈 지 8년째다. 통화정책의 적절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 통화당국이 지금 걱정하는 것은 ‘일본화(Japanification·일본식 장기불황)’다. 미국보다 유럽이 더 심각하다. 우리는 유럽보다 위험도가 더 높다. 일본보다 더 빠른 고령화 속도가 그렇고 경제 펀더멘털이나 산업구조·의식구조 등도 일본과 닮았다. 그런 것들이 다 불안요인들이다.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최대 변수를 하나 꼽는다면 통화정책이라고 본다.
-통화정책이 잘못되면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인가.
△우려되는 것은 통화정책이 부동산 가격에 지나치게 얽매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부동산 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통화정책의 타깃(조절 대상)은 인플레이션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아닌 강남 집값 상승률에 통화정책을 타기팅하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가장 가파르게 오른 강남 집값 상승률을 제로로 만든다면 다른 물가는 뚝뚝 떨어질 것이다. 그게 디플레이션이다. 통화정책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치적 시각에 민감하게 반응해 휘둘리면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설마 강남 집값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겠나.
△이런저런 수단을 다 동원했는데도 집값을 못 잡으면 통화정책에 대한 압력이 막대할 것이다. 부동산 문제가 통화정책 운용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려는 상존한다. 2018년 11월의 기준금리 인상이 그랬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전반적인 경기가 내려갔고 물가도 목표치를 한참 밑돌았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또다시 들썩거리자 이낙연 총리가 (금리 정책에 대해) 한마디 했다. 그러다 2개월 뒤 금리가 인상됐다. 앞으로 통화정책의 관건은 디플레이션 리스크 방어다.
-정부 지출 증가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 국가부채 비율 등에 대한 매직넘버는 없다. 문제는 지출을 확대하면서도 재정을 다시 채울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재정은 한번 지출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지출 속도도 빨라진다. 올해 세수 증가율은 마이너스가 될 텐데도 내년 지출 증가율은 두자릿수에 육박한다. 1990년대 디플레이션에 빠지기 시작한 일본이 겪었던 상황과 유사하다. 1990년 세수 총액이 100이라면 2010년 80으로 쪼그라들었다. 199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였던 국가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데 불과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도 일본처럼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재정확대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앞으로도 추세적으로 재정적자가 이어질까 봐 걱정이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4년간 텍사스A&M대 경제학과 조교수였으며 1995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거시경제와 미래정책과제 등을 연구했다. KDI 선임연구위원·거시금융연구부장·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역임하면서 KDI 간판 이코노미스트로 명성이 높았다. 2016년 기획재정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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