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교정책을 이끄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21일 1박2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중국에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중갈등 속에 우리 정부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큰 만큼 미중 간 문제에는 선을 분명히 긋고 ‘자유무역’ ‘국제협력’과 같은 외교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함께 지금껏 풀리지 않은 ‘한한령(限韓令)’의 완전한 해제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역할을 주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일 중국 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대체로 양 정치국원이 미중갈등 상황을 고려해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정부가 최근 외교·안보 라인을 ‘친미파’에서 ‘자주파’로 크게 물갈이한 상황에 맞춰 남북 모두 미국에 불만이 있음을 간파하고 방한 시점을 정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최근 구축하고 있는 ‘반중 전선’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여기에 균열을 줄 수 있는 틈으로 한반도를 주목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기회를 잘 포착해 우리 정부가 중국의 의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한국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내미는 카드에 무작정 맞장구를 칠 경우 되레 국제사회에서 우리 몸값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우수근 콘코디아국제대학교 대외교류부총장은 “미중 대립 국면에서 ‘국제협력 지향’ ‘시장경제 지향’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 최우선 지향’과 같은 우리 외교의 대원칙을 양제츠 앞에서 천명할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양 정치국원이 분명히 5세대(5G)나 화웨이 문제를 거론할 텐데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자율적으로 시장에서 결정한다’는 논리로 압박을 비껴가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시 주석 방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은 예전부터 북핵 문제에 대해 한국이 미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중국에도 역할을 기대하기를 바란다”며 “양제츠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보다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시진핑 방한과 한한령 해제 문제도 즉석에서 판단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부분도 강하게 요구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미중갈등은 미국과 중국 간 문제이니 이 문제에 한국까지 끌어들여 선택하게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며 “한한령은 시 주석의 방한으로만 해결될 수 있으므로 경제적 ‘윈윈’을 위해 구체적 일정을 내놓으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계는 있겠지만 북핵과 북한과의 대화 중재 역할도 부수적으로 요청해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중국연구소장)는 “사드 관련 안보 리스크가 경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도 북한에 하나의 신호로 전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을 활용한 3자 인도적 협력을 추진해 남북 교착상태를 푸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이제껏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주요 행위자는 아니었고 북한과 같은 목소리를 내왔다”며 “핵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제 제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인도주의적인 남북 협력을 회복하는 방안을 중국과 구상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중갈등과 관련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경환·허세민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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