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가정보원과 여야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일부 권력을 ‘위임받아 통치’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했다. 이에 북한 전문가들은 경제실정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해, 국제 제재, 불확실한 북미관계 등으로 통치 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서 책임을 분산하거나 전가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 위원장이 권력 안정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른바 ‘시스템 통치’에 나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 부부장이 대남·대미업무를 총괄하는 ‘2인자’라는 사실은 수차례 담화문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아직 김 위원장과 권력을 나눌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대체로 많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집권 초기에는 스스로 하나하나 챙기면서 통치를 학습했다면 이제는 업무 파악이 됐기 때문에 책임 부담을 덜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코로나19와 불안정한 대외환경으로 리스크가 높아졌다는 점이 김 위원장의 통치방식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평가하며 “중간책임자들에게 업무를 분산시켰다가 잘못될 경우 책임을 묻는 방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도 썼던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에 대해서는 “김 부부장이 대남·대미업무를 총괄한다 해도 경험이 일천해 온전히 다 결정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대남 부문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고문 역할을 해주고 외교 부문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보좌 역할을 아직도 한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유일영도 체제인 북한에서 위임통치는 비상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건재한 정상 상황에서는 정치는 김 위원장 자신이 직접 관장하고 경제·사회·군사·대외 등은 분야별로 책임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임통치가 아니라 역할 분담이고 이는 김 위원장의 정치적 관리 용병술”이라며 “김 위원장의 권력이 안정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비상사태를 대비해 김 부부장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후계자를 정해놓기 전에 갑자기 김 위원장에게 이상증세가 생기면 급하게 대체할 사람이 필요해 ‘백두혈통’을 미리 정해놓는 절차라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경제목표 달성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미국의 새 행정부가 꾸려지는 것을 지켜보며 대내외정책의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당 전원회의에서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당 대회 개최 시점은 북한 내부 사정보다 미국 대통령선거 일정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는지 보고 이를 고려해 새 대외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북한에 ‘러브콜’을 보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다시 북미협상을 통해 대북제재 해제의 물꼬를 트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 위원장과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한 경험이 있으며 최근까지도 대화의 여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인내’ 정책을 채택한다면 북한은 억제력을 과시해 압박을 추구하는 등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은 과거 인터뷰에서 한국·일본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게 해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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