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27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해군 공창. 전함 아이오와의 거대한 선체가 드라이독을 빠져나와 바다에 떴다. 서둘러 무장을 탑재해 실전 배치된 이듬해 2월부터 전함 아이오와는 미 해군 타격력의 상징으로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진수 당시 미국은 이 전함을 세계 최대로 여겼다. 그럴 만했다. 기준배수량 4만8,425톤에 연료와 탄약을 가득 적재한 만재배수량이 6만9,100톤에 이르렀으니까. 미국은 일본이 2년 전 진수한 전함 야마토가 만재배수량 7만2,809톤에 이르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1942년 말에야 알아챘다.
크기로는 최대가 아니라도 아이오와급은 공격과 방어·기동에서 단연 최고 전함으로 손꼽힌다. 길이도 270m로 야마토보다 7m 길다. 엔진은 21만2,000마력으로 야마토(15만3,553마력)보다 훨씬 강했다. 배수량은 적은데 출력이 크니 고속을 냈다. 최대 시속 32노트(비공식 35노트)로 야마토급(27노트)보다 훨씬 빨랐다. 건조비는 척당 1억달러. 야마토보다 30% 이상 비쌌다. 일본의 인건비가 낮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고급기술이 그만큼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떤 함정보다 비싼 아이오와급을 4척이나 뽑아냈지만 막상 항공모함 중심으로 진행되는 태평양전쟁에서는 써먹을 일이 많지 않았다. 자매함인 미주리호가 일본의 공식 항복을 받은 함정으로 부각했을 뿐이다. 종전과 함께 퇴역했던 아이오와급 전함은 한국전쟁을 맞아 재취역, 함포로 북한과 중공군을 두들겨 팼다. 백선엽 장군의 1군단이 주로 아이오와급 전함의 함포사격 지원을 받아 화력전을 펼쳤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이후에도 베트남전과 걸프전을 맞아 퇴역과 재취역을 되풀이했다. 거대한 함정의 상징성과 핵폭탄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16인치 주포 9발 동시사격의 위력 때문이다.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한 아이오와급은 우연 또는 행운이 아니라 연속된 혁신의 결과다. 일본의 군축조약 탈퇴 직후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급과 사우스다코다급을 건조하며 축적한 고속전함 기술의 결정체다. 아이오와급에서 단절된 전함이 다른 형태로 부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해군은 지난 1980년대에 각종 미사일 512기를 탑재하는 아스널십(Arsenal Ship) 건조를 추진하며 함종을 전함(BB)으로 구분해 관심을 모았다. 전함의 후예 격인 아스널십은 한국에서 먼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해군이 중기과제로 추진하는 합동화력함이 축소된 아스널십이다. 고가의 미사일 200여기를 채워 넣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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